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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역에 가면 싸고 맛난 보리밥이 있다
2011-10-10

부산국제영화제가 처음 열릴 즈음엔 맛집을 찾아다닐 여유가 없었다. 경제적인 여유는 물론이고 영화 보다 보면 끼니 제대로 때우기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내 기억에 부산의 식당들은 몇 군데 빼고는 정말 별로였다. 남포동에서 해운대로 옮기고 나서는 더 그랬다. 그래도 기억나는 집이 있다. 맛있는 집은 자고로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해야 한다. 비싸고 맛있는 집은 갈래야 갈 수 없기 때문에 싸고 맛난 집을 알아야 한다.

이곳은 영화제가 아니라 대학시절 혼자 여행할 때 발견한(!) 집이다. 다행히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다. 당시 가격 1천원짜리 보리밥을 먹고 얼마나 감동을 했는지. 몇 년 지나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렸다. 수십명의 영화친구들과 남포동과 광안리를 누비며 밤새 술을 마셨지만, 다음날 해장은 각자의 몫이었다. 나는 잠시 짬을 혼자 훌쩍 다녀오거나, 서울과 부산을 오갈 때 한 번씩 들려 추억의 맛을 느끼곤 했다. 해장에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으나 거뜬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영화의 거리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혼자만의 맛집이라고 할까? 해운대로 옮긴 이후엔 자주 가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올해는 한번 가봐야겠다. 부산역 맞은편에 위치한 부원 보리밥집이 그곳이다.

일단 테이블 위엔 항아리에 푸짐하게 담긴 배추와 열무 절임이 있고, 된장과 고추장 종지가 놓여있다. 메뉴판을 보고 큰놈과 작은놈을 선택할 수 있다. 주문 3분만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보리밥과 콩이 그대로 살아있는 청국장과 무생채, 콩나물 그리고 풋고추를 내온다. 신중하게 재료들을 보리밥에 얹고 침을 삼키고 땀을 닦으며, 세심하게 비비면 일품요리 부럽지 않은 보리비빔밥이 만들어진다. 된장과 고추장에 쓱쓱 비벼먹는 보리밥은 지친 허기를 달래게 해주고 지나간 영화를 혼자 곱씹어보는 여유를 건내준다. 지금 가격은 3,500원으로 20년 전보다 세 배 올랐지만, 대학 등록금 인상폭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다.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들를 수 없는, 오직 기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만 갈 수 있을 서민적인 맛집 부원 보리밥집을 추천한다. 부산역 건너편을 어슬렁거리면 금방 찾을 수 있다. 기차를 타는 분들 꼭 들러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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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