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지대> Memories Corner 오드리 푸셰 | 프랑스, 캐나다 | 2011년 | 82분 | 플래시 포워드
1995년 고베 대지진은 일본 사회를 되돌아보게 만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영화는 프랑스에서 온 여기자의 시선으로 이 참담한 기억을 되살린다. 이 지점에서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이 떠오른다. 일본의 역사와 프랑스 여자가 상처를 통해 만나고 기억을 반추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유사점이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두 영화는 사랑의 양상이 다르다. <히로시마 내 사랑>이 더 해체적이고 허무한 감각을 유발한다면 <기억의 지대>는 통합적이고 치유적인 성찰을 지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이 영화의 장점이자 어떤 의미에서 한계다. 치유는 희구할수록 의식적이 되고 의식적인 모든 것은 부자연스러움을 필연적으로 함유하기에 그렇다. 무엇이든 안팎에서 바라보는 시도는 다다익선이므로 다소의 부자연스러움은 상쇄할 만하다.
아라 세르비에는 고베 지진 이후 발생하는 ‘외로운 죽음’에 관심을 갖고 프랑스에서 일본으로 온다. 정확히 말하면 외로움으로 인한 죽음이지만 죽는 순간도 외로운 죽음들은 일본 사회에서 이슈가 되긴 했다. 그러나 그 연결 고리는 제대로 규명된 바가 없다. 세르비에는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마련된 거주지에서 이시다를 인터뷰한 후에 뭔가 특별한 기운을 감지한다. 추가 인터뷰를 원하는 세르비에는 당국의 알 수 없는 제재를 느끼고 독자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초현실적인 관념이 작동하는 이 영화는 매우 동양적이면서 서양적이다. 초월적인 힘이 인간을 이끌기도 한다는 동양적 사고와 그것을 합리적으로 묘사하려는 서양적인 서사가 만나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재난을 겪은 개인과 사회에 남겨진 숙제를 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