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터 넘버 4/11> 라누 고쉬 | 인도 | 2011년 | 120분 | 와이드앵글
<쿼터 넘버 4/11>은 골리앗 앞에서 물러서지 않은 다윗의 이야기다. 영화의 제목은 샴부 싱이라는 한 남자와 가족이 10여년간 둥지를 틀고 살아온 인도 캘커타의 주소다, 샴부는 제이 엔지니어링에서 재봉틀을 도색하고 광택내는 작업을 해 온 노동자다. 2003년 공장은 급작스레 문을 닫고 직원 사택이 있는 부지를 고층 고급아파트 건설 컨소시엄‘사우스시티’에 매각한다. 하루아침에 실직한 노동자들은 무자비한 철거에 쫓겨나지만 샴부 싱만은 4/11호에서 기적처럼 버티며 일자리와 계약에 보장됐던 보금자리를 되찾는 지루한 싸움을 한다. 전기와 수도가 끊긴 쿼터 4/11호를 포위하고 하루가 다르게 솟아오르는 사우스시티 단지는 모르도르의 첨탑들처럼 위협적이다.
현명하게도 라누 고쉬 감독은 샴부를 오직 투사로 규정하고 투쟁의 추이만 따라가는 우를 범하지 않음으로써 사회적으로 예민한 이슈를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빠지는 함정을 피한다.인터뷰에 나선 카메라는 비관적 상황에서도 놀랄 만큼 형형히 빛나는 샴부의 눈동자를 놓치지 않는다. 관객은 그의 일상을 바라보는 동안 남자의 의지가 낙천적 기질과 가족들과의 끈끈한 유대에서 비롯됨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쿼터 넘버 4/11>은 샴부의 케이스가 밥그릇과 지붕을 지키려는 생존투쟁인 동시에 고독과의 싸움임을 알아본다.“이렇게 외로워질 줄은 몰랐습니다.”이웃의 동료들과 어울려 살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샴부는 고백한다. 외부자의 방문이 금지되자 감독이 샴부에게 들려보낸 카메라는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를 건져올린다. 남자는 언젠가 자기 손으로 만든 재봉틀 앞에 아내를 앉히고 가까이 더 가까이 찍는다. 그리고 재봉틀에 새겨진 회사-자기 가족을 허허벌판에 내던져버린-의 로고를 지그시 응시한다.
검은 바탕의 자막이 사건의 전개를 설명하는 이정표 기능을 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픽션영화에 뒤지지 않는 극적 궤적을 그린다. 영화의 마지막 장을 보고 난 관객의 귓가에는 밤새도록 둔탁하고 잔혹한 철거용 해머의 굉음이 울려 퍼질 것이다. <쿼터 넘버4/11>은 우리의 심장박동이 그 소리에 지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