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안과 목소리들> Joan and the Voices 미카옐 바티니안 | 아르메니아 | 2011년 | 67분 | 플래시 포워드
상처는 유령처럼 주위를 맴돈다.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고, 만질 수 없지만 스스로를 옭아매어, 종국엔 과거 속에 머물게 한다. <조안과 목소리들>은 전쟁의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조안의 삶과 회복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상처의 풍경을 보여주고 그것이 아물어가는 소리를 듣게 한다.
‘조안’의 프랑스식 이름은 ‘잔느’다. 잔다르크 재판의 한 대목에서 출발하는 이 영화는 시작부터 스스로 목소리의 영화임을 밝힌다. 언제 신의 목소리를 들었냐는 재판관의 질문에 “항상!”이라고 대답하는 잔다르크처럼 조안을 치유해줄 수 있는 것 역시 누군가의 목소리다. 다만 그것은 신이 아닌 인간, 그것도 자신과 같은 상처를 공유한 타인의 사연일 것이다. 성인이 된 조안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아르메니아의 폐허 속을 여행한다. 영화는 언뜻 분절되어 있는 듯 보인다. 아무런 설명 없이 끊어지며 등장하는 전혀 다른 장소와 인물들의 모습이 처음에는 당황스럽다. 어린 조안의 기억, 탄광을 헤매는 남자, 현재 조안의 여행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조안과 목소리들>은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각각의 고립된 사건들을 하나로 묶으며 그 의미를 밝힌다. 연결지점 없이 각각의 화면에 갇힌 인물들이 영화의 끝에서 기적처럼 하나가 된다. 이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적처럼 목소리가 쏟아진다.
<조안과 목소리들>은 침묵의 영화이자 애도의 영화다. 영화의 마지막 조안이 만난 사람들의 사연과 목소리가 쏟아질 때 조안은 드디어 고통에서 해방된다. 조안은 그들의 목소리에 담긴 사연을 들음으로써 혼자가 아님을 깨닫고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시종일관 아픈 소음 혹은 끔찍한 침묵으로 닫혀있던 영화는 상처 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안과 밖, 과거와 현재, 타인들을 하나로 묶는다. 그것은 우리가 과거의 상처와 마주하는 방식이며, 조안의 삶 위에서 발칸반도의 과거와 현재를 만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