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부산국제영화제 조영정 프로그래머는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인도네시아의 젊은 감독 9명이 주축이 되어 만든 옴니버스 상영작 <벨키볼랑: 자카르타의 밤> 때문이다. “연출에 참여한 모든 감독들이 AFA(아시아영화아카데미) 출신이더라. 부산에서 수업을 들은 뒤에도 자국에 돌아간 학생들이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으며 함께 영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 뿌듯했다. 국제무대에서 AFA의 위상을 졸업생들이 제대로 세워주는구나 생각했다.”
아시아영화아카데미(이하 AFA)가 올해로 7회를 맞는다. AFA는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와 동서대학교,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아시아의 재능 있는 신예 감독을 발굴하고 육성하겠다는 취지로 만든 교육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허우샤오시엔, 임권택, 모흐센 마흐말바프, 구로사와 기요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등의 거장 감독들이 AFA의 교장을 역임했으며 아시아 24개국 147명의 젊은 감독들이 이 프로그램을 거쳤다. 졸업생들은 아카데미를 수료한 이후에도 칸, 로테르담 등 세계적인 국제경쟁영화제에 매년 신작을 출품하며 조영정 프로그래머의 말대로 AFA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올해는 앞서 언급한 <벨키볼랑: 자카르타의 밤> 이외에도 이정진 감독의 단편 <고스트>가 칸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서 상영됐고 인도네시아 감독 푸르바 네가라의 단편 <처음부터 다시 시작>과 네팔 감독 아비나쉬 비크람 샤하의 단편 <나는 행복합니다>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성과가 확실하니 해마다 지원자들이 몰리는 건 당연지사다. 올해는 아시아 21개국 144명의 젊은 영화인들이 AFA의 문을 두드렸고 6:1의 경쟁률로 24명의 참가자가 선발됐다.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데도 지원자가 많다. 지금 아시아에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젊은 영화감독 중 AFA에 도전하지 않은 감독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카데미의 진행을 맡은 조영정 프로그래머의 말이다.
이처럼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선발된 학생들은 9월29일부터 10월15일까지 AFA가 준비한 17일간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가장 핵심적인 수업은 2편의 단편영화를 제작하는 것이다. 올해 참가자들의 가장 중요한 선발 기준이 학생들이 제출한 시나리오였던 만큼 “AFA 사상 최강의 작품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는 게 AFA 운영진의 전언이다. 조 프로그래머의 귀띔이 이 말을 뒷받침한다. “단편영화를 만든다고 할 때 이전 참가자들이 현장에서 고려할 수 있는 변수는 로케이션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참가자들은 그 짧은 시간 안에 오픈 세트장을 만들었다. 예산도 얼마 안 줬는데, 대체 어떻게 세트장을 만들었는지!(웃음) 어떤 작품을 만들지 정말 기대가 크다.” 그 결과는 13일에 영화의 전당에서 열리는 공식 상영에서 확인할 수 있다.
7회 AFA를 진행하는 지도교수진은 예년보다 다채롭다. 유럽 아트하우스 영화의 지성을 대표하는 폴란드 감독 크지스토프 자누시가 교장을 맡고 인도 독립영화계의 주목받는 감독 무랄리 나이르가 연출 지도를, 리들리 스콧, 존 싱글턴 등 할리우드 메인스트림의 감독들과 작업해온 조니 E. 젠슨이 촬영 지도를 담당한다. 서로 다른 국적과 작업 여건을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해온 영화인들인 만큼, 참가자들이 실질적으로 얻는 경험의 폭도 한층 넓어질 듯하다.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후반 작업 프로그램이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이창동 감독과 이와이 슈운지 감독이 AFA 참가자들만을 위한 특별 마스터클래스를 준비하고 있으며, 아시안필름마켓과 연계해 영화산업 관계자들과 젊은 감독 사이에 다리를 놓는 네트워크 강화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갑자기 큰 변화를 주기보다는 지난 6년간 구축해놓은 프로그램을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현재의 목표다.” 조영정 프로그래머의 말처럼 AFA는 올해도 아시아 신세대 영화감독들의 인큐베이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