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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전 캐스트 어웨이
2001-03-08

로빈슨 크루소의 모델이 된 알렉산더 셀커크

<로빈슨 크루소> 홈페이지

http://www.thegrid.net/fern.canyon/pirates/robinson/crusoe.htm

알렉산더 셀커크 홈페이지

http://members.madasafish.com/~kirkcaldy/Alexander/Selkirk.html

<캐스트 어웨이> 공식 홈페이지

http://www.castawaymovie.com/

<걸리버 여행기> 그리고 <로빈슨 크루소> 등은 어린 시절 상상의 세계를 풍요롭게 해주는 대표적인 탐험 혹은 모험소설들이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이런 소설들일수록 원작을 제대로 읽은 이들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 대부분 아동용으로 적당히 각색된 내용을 읽었거나, 아니면 명절에 TV를 통해 방영되던 애니메이션을 보고 익숙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0여년 전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걸리버 여행기>의 원본이 출간되어 한동안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기이한 사건이 발생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이른바 ‘세계 명작’이라고 불리는 서구의 대표적인 고전소설들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기본적으로 별로 없는 것이다.

이번에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만든 <캐스트 어웨이>의 경우도, 그것이 대니얼 디포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쯤은 초등학생이라도 쉽게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정작 그 <로빈슨 크루소>가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소설이라는 점은 그다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그 실화의 주인공이자, <캐스트 어웨이>의 톰 행크스에게는 선조쯤이 되는 인물은 알렉산더 셀커크라는 이름의 영국인이다. 1676년 영국에서 태어난 그가 처음으로 선원이 되어 항해를 시작한 것은 19살이 되던 1695년. 교회에서 부정한 짓을 저질러 벌을 받게될 상황이 되자 바다로 도망을 쳤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항해는 1704년 해적질을 하기 위해 출정한 해적선단에 참여하면서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몇개월간 해적이 되어 노략질을 한 뒤, 그 노획물들을 가지고 알렉산더와 그 일행들은 다시 영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할 즈음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해상전투에서 배가 심하게 손상된 것을 알고 있었던 알렉산더가 선장에게 배를 수리하고 출발할 것을 요청했지만, 선장은 이를 거절했던 것. 이 과정에서 선장과 심한 의견 충돌을 겪은 그는 영국으로의 복귀를 거부하고, 칠레 해안에서 약 650km 정도 떨어진 후안 페르안데즈섬에 홀로 남겠다고 선언하게 된다. 물론 이런 그의 황당한 요구를 선장은 기꺼이 들어주었고, 이렇게 해서 진짜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가 시작하게 된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알렉산더 스스로도 그 상황이 자신에게 그토록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낼지 몰랐다고 한다. 그는 단순하게 다른 선원들이 자신의 결정에 따라줄 것이라고 믿었었지만, 그건 혼자만의 생각에 불과했던 것. 결국 떠나가는 배를 보며 다시 승선시켜 달라고 외쳤지만, 선장은 들은 체도 안 하고 유유히 가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렇게 황당하게 무인도에 남겨진 것이 실제로는 대단한 행운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예상했던 것처럼 영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배가 침몰하게 되고, 대부분의 선원들도 사망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렇게 시작된 무인도에서의 생활에서 그는 야생 염소와 고양이를 친구로 삼아 약 4년 반 동안 살아가게 된다. 그 기간 동안 그가 구출의 희망을 전혀 갖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약 2년 정도 지났을 때 거대한 배가 섬 주위를 지나가는 것을 보고 구조를 요청하며 달려갔지만, 당시 영국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스페인 선적의 함선이라 대포로 공격당하는 경험이 있었던 것. 결국 그뒤로 약 2년 반을 더 혼자 살아야 했던 그는 1709년 2월 우즈 로저스라는 선장이 이끄는 영국의 탐험선에 의해 구출되게 된다. 그뒤 알렉산더는 우즈 로저스 선장과 함께 페루와 칠레 연안을 습격해 약탈을 하는 임무를 끝내고, 1711년 꿈에 그리던 영국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더구나 성공적인 임무완수에 대한 보상으로 약 800파운드라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전적 보상까지 받게 된다.

그의 이런 극적인 모험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리처드 스틸이라는 작가가 그의 이야기를 <영국인>(The Englishman)이라는 책으로 펴내면서부터였다. 셀커크는 엄청난 재산까지 가진 일종의 유명인사가 되지만, 무인도의 악몽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고향으로 돌아가 결혼까지 하고도, 집안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 뒤에 동굴과 정자를 만들어 생활을 하며 고양이들을 길들이는 데 열중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그렇게 서서히 미쳐가고 있는 자신을 살려내기 위해 다시 바다로 나갔고, 45살이 되던 1721년 아프리카의 한 해안에서 열병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런 알렉산더의 이야기가 <로빈슨 크루소>로 발전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많은 설들이 있다. 알렉산더와 대니얼 디포가 전혀 만난 적도 없다는 설부터 두 사람이 여러 번 만난 것은 물론이고 알렉산더가 디포에게 자신이 쓴 일지를 전했다는 설까지 있을 정도다. 하지만 <로빈슨 크루소>가 알렉산더의 모험담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만은 의심에 여지가 없어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캐스트 어웨이>는 물론이고 최근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TV프로그램인 <서바이버2: 호주 아웃백>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험담이 계속 차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문명과 유리된 공간에 떨어진 문명인이 겪는 모험 이야기라는 것이, 영원히 문명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임이 틀림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bandee@channel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