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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방하게 외치자, “저기요…”
2010-10-14

작은 영화를 만드는 연출자, 그러니까 꽤 알려졌고 속세에서도 여력이 있는 업자가 아닌, 재산이라고는 소정의 상징자본 (그렇게 부르기도 민망한) 밖에 없는 이들이 한푼이라도 더 모으고 한컷이라도 더 고민해야 할 시간에 굳이 먼 도시의 영화제를 찾고 아이디를 발급받고 숙박을 하고 조식을 챙겨먹는 (무슨 간부 수련회에 온 임원들처럼) 이유는, 세상이 다 알다시피 성.욕. 때문이다. 처음 본 이들끼리 몰래 몰래 부딪히듯, 그냥 하루나 이틀을 지르듯 하는 그런 섹스에 대한 기대 - 그리하여 해변에서 크루징을 하거나, 별 인연 없는 파티에 기어코 찾아가 멋쩍은 춤을 추거나, 이미 충분히 마신 술의 2차, 3차를 부르짖거나 하며, 달뜬 심신끼리의 수요 공급이 1:1이 되길 소망한다. 들고 온 영화의 평판이 괜찮을수록 좋은 섹스를 할 확률은 높아지지만, 그 기준이 꼭 영화제의 선호와 일치하진 않는다. 가령 지나치게 ‘착한’ 영화를 들고 온 이들은 상을 받건 매체의 주목을 받건 이 찰나의 기간에 만난 누군가와 스스럼없이 포개질 실속은 오히려 적다. 일단 좀 남우세스럽다…고 스스로들 생각한다. 기껏 공들여 쌓아온 서사와 어울리지 않는 민망한 제스처 아닐까 지레 움츠러든다. 아쉬운 일이다. 준수한 극영화를 만들어왔으니, 늠름한 다큐를 편집해왔으니, 더더욱 ‘와~ 참 좋네요, 우리 오늘 열심히 섹스해요, 그간 미뤄둔 만큼 더 열심히 해봐요’ ‘아, 그런가요? 그럼 우리 오늘 진짜 좋게 해요, 지금 숙소도 뭔가 실제 생계의 공간보다 뽀대나니까, 아침에 시트 위의 체모 같은 걸 직접 정리할 필요도 없으니까, 이렇게 저렇게 여러 자세 시험해보아요? 마치 내일은 없는 것처럼’ 이렇게 호방하면 좋으련만.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산을 관장하는 올림푸스의 캐릭터는, 비너스도 큐피드도 아닌 酒神 바쿠스. 일용할 성욕을 대신해 도착적으로 복용하는 알코올들 사이로 너는 내가 되고 나도 네가 되는 척 하는 기운들. 한잔 두잔 석잔, 에헷, 사실 이것도 좋다! 호방하다! 기껍다! 다만 한번쯤 아니 두번쯤은, 영화제라는 공간에서 맘먹고 프러포즈하고 헌팅하고 부킹을 해보는 건 어떨까. “나 무슨 영화 만든 누구인데” 식의 치사한 전시는 하지 말고 정말 떳떳이 땅에 두 발 딛고 즉흥의 호감을 떳떳하게 건네는 건강한 제안. “저기요” 떨리는 3음절을 건네는 마음과 ‘이건 또 뭔 수작인가’ 하면서도 걸음을 멈춰주는 상대의 여지. 일단 이번 부산부터!

*아, 여러분 여기서 ‘섹스’는 ‘영화’에 대한 은유인 거 아시죠?

글 윤성호/ <은하해방전선>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