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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집 아줌마, 제 사인 갖고 있죠?
2010-10-13

2005년 10회 부산영화제였다. 그전까지 부산이란 곳도, 영화제란 곳도 가 본 적이 없어 들뜬 마음에 가장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승합차로 배우들과 스탭 10여명이 함께 부산으로 내려갔다. 영화도 300만원짜리 저예산 영화인데 내려가는 꼬락서니도 참으로 저예산스러워 어떤 기자는 동행 취재를 하겠다는 의견을 물었지만, 고속도로에서 시속 60km밖에 낼 수 없는 차를 함께 탔으면 취재는커녕 민폐만 끼쳤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이라고 영화제를 무지 많이 다닌 건 아니지만, 돌아보면 영화제란 게 당최 뭔지 모르는 저예산 감독이 촌티를 꽤나 냈던 거 같다. 영화도 3시간 짜리인데 GV()에서 나오는 질문에 상품이라도 걸린 양 보고서 쓰듯이 답변을 하는 바람에 관객들이 자정을 넘어서 돌아가는 일도 있었다. 작년 부산영화제에서는 안성기 선배님이라는 든든한 코치 덕에 공식 기자회견 후에 어떤 답변이 적절한 답변이었는지 평가를 들을 수 있어 대충 가늠을 할 수 있었는데, 나의 첫 번째 영화제는 그저 열심히 누구를 만나든 주저리주저리 촌스럽게 떠들기만 한 것 같아 얼굴이 조금 화끈거린다. 그래도, 300만원짜리 저예산 독립영화와 5년 동안 제작사를 네 군데나 옮겨가며 사연 많은 영화를 들고 부산을 찾는 감독 입장에서 부산영화제는 언제나 삶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진통제 역할을 해주었던 것 같다. 막상 개봉하면 절대 그런 일이 없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전회 매진되고 표를 구할 수 없어서 여기저기서 발을 동동 구르는 광경들을 보며 흐뭇해하고 내가 누구인지 어떤 영화를 만들었는지, 절대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을, 국밥집 아주머니들이 사인 요청을 하면 음식 값을 카드 결제한 후 했던 그 싸인 모양 그대로 (단지 크기만 좀 더 크게) 사인을 하고. 모두 평상시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그 시기, 그곳에서 나는 그것들을 충분히 즐기고 온다. 솔직히 그거라도 어딘가, 싶다.

글 신연식/ <좋은 배우> <페어러브>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