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내가 보고 싶어 하던 영화를 상영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토요일. 주말에 티켓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티켓을 손에 쥐게 되었다. 영화는 생각보다 지루했다. 주리를 틀고 앉아 머리로 방아 찧기를 수없이 하고 일어나도 비슷한 장면과 내용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프로그래머의 추천을 믿은 내가 바보였어! 상영관을 박차고 나가 영화를 강추한 프로그래머의 머리채를 잡고 싶다고 느끼던 순간 강렬한 키스신에 한없이 빠져 들게 되었다.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동안에도 키스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키스를 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누군가 달려와 나를 거칠게 안고 내 입술에 그의 입술을 포개고 또 혀를 넣어주기를 열렬히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주변에는 배 나오고 머리 빠지기 시작한 아저씨 제작자들뿐이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일이란 ‘소폭’을 말아 얼른 취하는 것 뿐. 몇잔을 마셨는지 취기가 금방 올랐다. 3차를 가자는 걸 뿌리치고 바람도 쐴 겸 해운대 바닷가로 나갔고 거기서 화살을 맞았다. 큐피드의 화살을.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백사장에서 소주를 까고 있었다. 안주라고는 고작 새우깡과 오징어 정도. 그 중 꽃돌이 한명이 있었고 그 꽃돌이의 생일이라고 했다. 아니 그런 것 같다. 꽃돌이가 친절하게도 자기 옆자리를 치워주며 앉으라고 했다. 이럴 때 거부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그들과 어울려 소주를 여러잔 마신 것 같고 꽃돌이와 눈길을 계속 주고받은 것 같다. 그리고 꽃돌이의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나를 자극했다.
다음 날 아침. 숙취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눈을 떴는데, 아뿔싸 내 옆에 자고 있는 건 그 꽃돌이가 아니었다. 내 식성(이상형을 뜻하는 게이들의 은어)이 전혀 아니었고 코까지 골고 있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녀석을 뒤로하고 모텔방을 나왔다.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다 술 때문이다. 그리고 강렬한 키스신 영화를 추천한 프로그래머 때문이다. 잊고 싶은 기억이다.
참, 언제 적 얘기인지는 묻지 마시라. 지금 내겐 6년차 애인이 있으니. 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