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당나귀> The Old Donkey 리뤼준 / 중국/ 2010년 / 112min / 뉴 커런츠
땅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나를 심으면 하나를 내어주며 언제나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왔다. 항상 당나귀를 타고 다녀서 ‘늙은 당나귀’라 불리는 마씨는 그런 땅과 평생을 대화하며 살아왔고, 어느새 땅을 닮아버렸다. 자식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오래된 고목처럼 홀로 시간을 버텨내는 마씨에게 땅은 친구이자 가족이며 선생님인 동시에 자기 자신이다. 자신이 부모님을 공경하면 자식들도 자신을 공경하리라 정직하게 믿으며 살아왔지만, 이미 시대는 변하고 오래된 믿음은 사람들 사이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시골구석까지 찾아온 개발의 바람은 마씨에게 그나마 남아있던 땅의 권리마저 앗아가려 한다. 마씨는 그럼에도 묵묵히 당나귀에 늙은 몸을 싣고 황무지와 다름없는 땅을 일구는 것을 쉬지 않는다. 격변기를 거친 중국 기성세대의 그늘과 서글픔을 담아낸 <늙은 당나귀> 속 마씨의 지친 어깨는 우리에게도 어딘지 낯익은 뒷모습이다.
길고 느린 화면으로 잡아낸 대지의 황량함은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마씨와 당나귀의 움직임으로 하나의 그림을 완성시킨다. 황무지와 다름없는 그런 사막의 비탈 위에 느리지만 쉼 없이 땅을 일구는 마씨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화폭에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의 모습처럼 보인다. 마씨의 느린 움직임으로 천천히 경작되어가는 땅의 모습은 아름다운 만큼 안타까움을 더한다. 늙은 농부의 이 구도적 자세는 멈춰진 화면 위로 면면히 흐르는 구슬픈 노랫가락과 섞여 애잔함을 자아내고, 관객에게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보편적인 슬픔을 전한다. 우리는 늙은 당나귀가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을 알고 있지만, 감독의 무한한 애정이 엿보이는 느리고 조용한 화면들을 응시하며 위로 받는다. 선명하게 대조되는 푸른 하늘과 사막 같은 대지, 그 위에 자국을 꾹꾹 찍어 나가는 노인의 발걸음은 그것으로 이미 대지 위에 새겨진 시간의 장구함을 보여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