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영화가, 엎어졌다. 크랭크인 열흘 전, 한창 분주한 사무실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 순간 섬광이 번쩍. 정신을 차리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사람이 최악일 땐 고속도로, 그것도 경부고속도로를 저절로 달리게 되더라. 뭔가 묵직한 게 가슴팍을 짓눌렀지만, 슬픔도 절망도 아닌. 단지 멍하기만 했다. 멍하니까 배가, 죽도록 고팠다. 휴게소 TV에서 속보가 나왔다. ‘최진실’이 죽었다고 했다. 순간 먹던 우동 가락이 입부터 위까지 안 끊어진 한 줄로 그냥, 섰다. 그리곤, 미치도록 나는 울었다. 안 멈췄다. 울면서 다시 운전을 했다. 그제야 엿같이 슬펐고 절망스러웠다. 무작정 부산을 보고 싶었다. 위안일 것 같았다. 맹목적으로 달렸다. 그런데 문득. 부산영화제 기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1km도 더 갈 수가 없었다. 그게 누구건, 만나는 족족 받게 될 수많은, 뻔한 질문들에 단 한 줄 답할 자신이 없었다. 전라도로 방향을 돌렸다. 그 부산영화제라는 게, 얼마나 증오스러웠는지 모른다. 전라도를 대신 내달리며 저주를 퍼부었다. 부산영화제, 지옥에나 떨어져라! 영화 엎어진 감독이 목 놓아 울고 싶었던 해운대 해변을 죄다 장악해버린 영화제 따위, 집단으로 엿들이나 먹어라! 엎어지지 않고, 영화 만들어 잘난, 너네끼리 죄 다 해쳐먹어라!
2009년. 새 영화를 준비하며, 영화사 아침 대표님과 함께 다시금 부산을 찾았다. 언제나 그랬듯, 영화제를 맞은 부산은 성황이었다. 활기찼다. 한 해 전, 그토록 저주했던 부산영화제의 한 중간에 멀뚱히 서보니. 엄청났다, 그 활력. 이 에너지가 결국 영화하는 맛이었던 것을. 이게 결국 영화를 하게, 했던 것을. 우습게도. 영화를 다시, 정말 잘, 만들고 싶어졌다. 그리고, 슬픔 절망. 암튼 뭘 겪은 사람이건, 부산영화제의 심장인 해운대 바닷가를 뒹굴 자격은 평등하다는. 바보같이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문턱 없이, 차별 없이, 모두를 포용하는 축제였다는 것을, 낯간지럽게도 되새겼다. 새 영화가 완성되면, 혹은 언젠가 또 영화가 엎어지면, 그게 언제건 본능적으로 즉발적으로 나는 부산을 찾을 것이다. 담대하게, 갈 것이다. 부산은, 그런 곳이다. 언제나, 그 정도인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