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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취하듯 아련한 시공간
2010-10-09

과학자에게 ‘영화제’는 익숙한 시공간이다. 과학자들에게도 ‘학회’라는 게 있어서, 자신의 최신연구 결과를 많은 사람들 앞에 처음 선보이기도 하고, 걸출한 대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조연설을 하기도 하며, 대학원생들과의 ‘만남의 자리’를 갖기도 한다. 경쟁부문이란 것도 있어서, 우수한 발표나 포스터(자신의 연구를 포스터에 담아 전시하는 연구발표방식)에 시상을 하기도 한다. 학회가 과학자들이 우주 끝 간데 없는 ‘과학적 상상력’을 소통하는 자리이듯, 영화제는 그저 영화인들의 ‘예술적 상상력’을 주고받는 자리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내게 더욱 익숙한 시공간이다. 영화제가 세상에 선을 보인 첫 해, 나는 달뜬 얼굴로 3일간 그곳에 머물렀다. 거리에는 영화팬들이 넘쳐나고, 선술집에선 영화배우와 감독들이 벌건 얼굴로 술을 마시고, 좁은 극장 거리를 돌며 영화를 배회했던 시간이었다. 특히나 영화제 마지막날엔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상영된 폐막작인 일본 애니메이션(오오토모 가츠히로의 <로스트 메모리스>였던 걸로 기억되나 사실은 가물가물 :-)을 보며, 별이 빛나는 밤하늘과 적막같은 우주를 담은 스크린이 서로 맞닿아, 아름다운 노래에 취해 우주에서 길을 잃은 주인공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경이로운 경험을 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적 상상력이 투영된 스크린은 이 풋내기 과학도에겐 과학적 상상력이 반영된 ‘우주’가 돼가고 있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2010년. 우주를 단숨에 이해하겠다던 야심찬 과학도는 어느덧 제 명함을 가진 과학자가 되어 한두 차례 세파에 시달린 지친 뇌를 이끌고 부산을 다시 찾게 됐다. 우주는커녕 한 길 사람 뇌 속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걸 ‘부산국제영화제의 역사’ 동안 깨달은 그는 ‘시네마 투게더’라는 영화팬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시간을 통해 위무받고자 온 것이다. 다시 내 삶이 스크린 속 우주처럼 적막하나 광대하고, 끝을 알 수 없으나 경이로울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