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 케플러의 세계는 팽창 중> Ollie Kepler’s Expanding Purple World 영국/2010년/86분/플래시 포워드
우주에 관한 농담이거나 사랑과 인생에 대한 선문답이거나. ‘거칠다’라는 단어의 이중성을 잘 보여주는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로맨스부터 성장, 코미디까지 정적인 내러티브의 생각가능한 모든 장르를 훑고 지나간다. 반면 어떤 장르의 전형과도 닮지 않은 일종의 실험적 활력을 보여주는데, 매끄럽고 관습적인 연출을 포기한 대신 얻은 주제에 대한 독창적인 접근 형식이 실로 주목할 만하다.
주위로부터 인정받는 웹 디자이너 올리 케플러는 천문학 광으로 모든 것을 우주의 성질에 빗대어 사유하는 버릇이 있다.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그는 사랑의 광기와 우주의 팽창에 관한 여러 가지 유사점을 늘어놓으며 점점 스스로 창조해낸 우주적 심연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점점 팽창하는 그의 세계는 크기의 문제가 아닌 밀도의 문제에 봉착하는데, “낫딩 이즈 리얼(Nothing is real)”이라는 존 레논의 말처럼 모든 것이 공허해지고 마는 것이다. 우주(혹은 우주의 모습을 한 사랑)에 관한 병적인 집착으로 끊임없는 환청을 낳고 급기야 직장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유지할 수 없게 된 케플러는 드디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사건이 아닌 주인공 올리 케플러의 의식 흐름을 따라가는 탓에 자칫 헐거울 수 있는 내러티브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우주에 관한 아이러니한 농담이다. 재미있는 것은 올리 케플러의 우주적 사유가 진지하게 심연으로 접근할수록, 영화는 심각해지는 대신 피식거릴 수밖에 없는 우주적 농담으로 가득 찬다는 점이다. 단조로운 리듬감 탓에 더러 산만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진해진 사랑과 인생에 관한 씁쓸한 블랙 유머로 인해 시종일관 실소를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우주를 배경으로 올리 케플러의 독백과 함께 반복되는 몽환적인 사운드와의 조화도 인상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