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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뒷골목을 헤매다
2010-10-07

배우가 되려고 했다. 20년전 고등학교 3학년 말쯤의 일이다. 나는 충남 공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졸업을 얼마 앞두고부터는 서울에 올라와 누나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날 신문에서 우연히 한 광고를 보았다. 부산대학교 후문쪽에 있는,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극단에서 배우를 모집한다는 것이다. 대학입시 공부를 해야 할 때였지만 무작정 기차에 올라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어쩌면 입시의 압박에서 도망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서울이 아니라 저 먼 부산,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서 살고자 했다. 평생을 무명배우로. 왠지 그게 멋있어 보였다.

다섯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혼자서 부산에 도착했다. 물어 물어서 부산대학교 후문을 찾아갔다. 비가 몹시 내리던 날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부산대 후문 근처에 있다던 그 극단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신문광고에 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받는 사람이 없었고, 주소지로 되어 있는 곳을 찾아 헤맸지만 극단은 없었다. 신문광고가 잘못 됐을 리는 없었다. 그저 단순히 부산대 후문 지리를 잘 알지 못하는 내가 그곳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서울에서 온 열아홉 살의 어린 고등학생은 어느 건물 밑에서 비를 피하며 어디로 가야할지를 알지 못했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다시 기차를 차고 부산을 떠났다. 부산으로 내려올 때와 마찬가지로 또 다섯 시간이 걸려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 나의 배우의 꿈은 끝이 나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부산에서 무명배우의 삶을 살리라는 내 계획은 무산돼 버린 것이다.

그날 이후로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왠지 모르게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부산에서 살겠다는 생각도 잊혀졌다.

그때 부산대 후문에 있다던 그 극단을 찾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정말 부산에서 무명배우의 삶을 살게 되었을까? 부산을 생각할 때면 가끔씩 그때가 떠오른다. 어쩌면 내 인생을 바꿔놓았을지도 모를 그 20년 전의 비오는 어느 하루가.

글 김광식/ 영화감독 <내 깡패 같은 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