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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로의 귀환
2010-10-07

개막작 <산사나무 아래> 감독한 장이모의 영화세계

1999년 베니스 영화제에 <책상 서랍 속의 동화>를 출품했던 장이모를 공식기자회견에서 봤을 때 그는 피로해보였다. 영화제 폐막이 며칠 남지 않은 날, 에밀 쿠스트리차가 리드하는 밴드의 특별공연을 즐기는 그를 멀리서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위치와는 달리 퍽 외로워보였다. 첸카이거와 함께 중국 5세대 영화감독의 대표주자였던 그는 데뷔작 <붉은 수수밭> 이래 그때까지 신작을 내놓을 때마다 중국정부의 견제를 받았다. 과거의 역사를 화려한 형식으로 재해석한 그의 영화는 중국정부로부터는 체제비판적이라는 지적을, 동아시아권 평자들로부터는 오리엔탈리즘의 대표적 사례라는 비판을 들었다. 무엇보다 그는 중국 본토에서 소외된 예술가였다. 서구의 자본으로 중국에 관한 이야기를 찍는 그는 <책상 서랍 속의 동화>를 찍기 전까지 제대로 작품을 중국 인민들에게 공개해본 적이 없었다. 그의 후배들은 지하전영이라고 불리는, 언더그라운드 제작 형태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 모든 게 장이모와 첸카이거 탓이라고 비난했다. 그런 동안 장이모는 중국 정부와 화해를 도모하고 있었다. 그 첫 번째 영화가 바로 <책상서랍 속의 동화>였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책상서랍 속의 동화>는 그저 그런 체제 옹호용 프로파간다 영화로 보였다. 부산영화제에서 만났을 때 장이모는 도시로 간 가난한 시골 아이에게 벌어지는 훈훈한 미담을 담은 이 영화가 결코 중국 정부의 비위에 맞춘 프로파간다가 아니며 실제로 현실에서 벌어졌고 앞으로도 벌어질 수 있는 얘기를 통해 세상에 선한 의지를 퍼트리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비판하는 후배 감독들에 대해서도 그는 고까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지아장커같은 감독은 자신이 갖지 못한 재능을 갖춘 뛰어난 감독이라고 추어올렸다. 그는 자신의 세대와 후배들은 서로 갈 길이 다르며 그 길은 나름대로 다 의미가 있다고 말한 끝에 ‘車走 包走’, 곧 인생이라는 장기판에서 차가 갈 길과 포가 갈 길은 다르다는 뜻의 글귀를 적어주었다.

초기작인 <붉은 수수밭> <홍등>으로 화려한 형식미를 보여준 장이모는 <귀주 이야기> <인생>등의 중기 영화를 비롯해 <집으로 가는 길> <행복한 시절> 등으로 기름기를 뺀 담백한 스타일로 돌아섰다가 <영웅>과 <연인> <황후화> 등의 최근 대작에서는 대륙적 허풍으로 가득 찬 오락영화를 추구했다. 그의 영화가 중국 사회에 대해 더 이상 말할 것을 잃어버렸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지만 장이모의 영화가 늘 형식에 대한 직관을 잃어버린 적이 없다는 것도 기억해야 마땅하다. 올해 부산영화제 개막작인 <산사나무 아래>는 흡사 장쯔이의 데뷔작이었던 <집으로 가는 길>과 유사한 감정, 순수의 시대를 찾아 윤색함으로써 자기 세대의 가능성을 재점검하는 태도를 느끼게 한다. 그게 현재진행형의 시선이 아닌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는 이제 비유적으로밖에 리얼리티를 다룰 수 없는 너무 많이 성공한 감독이 돼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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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영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