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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와는 밥도 같이 먹지 않았었지
이주현 2009-10-11

공포영화의 거장 다리오 아르젠토가 말하는 영화와 삶

이탈리아를, 전 세계를 대표하는 호러 스릴러 감독 다리오 아르젠토의 마스터 클래스가 10일 오후 4시 그랜드호텔 스카이홀에서 열렸다. 특별전과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되는 <지알로>로 부산의 영화 팬들과 첫 만남을 가지게 된 다리오 아르젠토는 다음과 같은 말로 마스터 클래스의 문을 열었다. “이렇게 판타스틱한 영화제에 참석하게 돼 영광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다리오 아르젠토다. 다리오 아르젠토를 만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힘들고, 굉장히 긴 여행을 통해서만 그와 얘기할 수 있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알기 힘들다. 농담이 아니다. 그렇기에 다리오 아르젠토가 생각할 거라고 짐작되는 걸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겠다. 그러나 그게 모두 진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럼 이제부터 시작하자.”

영화를 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감독이 되는 경우도 그렇다. 편집하다가, 평론하다가, 시나리오를 쓰다가 감독이 되기도 한다. 나는 평론가로 시작해서 시나리오 작가가 되었다. <수정 깃털의 새>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신뢰를 얻고 투자를 받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성공했다. 그 성공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이탈리아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성공했다. <수정 깃털의 새> 성공 이후 영화라는 회오리에 빨려들었고 삶 자체가 변했다. 카메라와 배우들과 사랑에 빠지면서 어쩔 수 없이 영화를 계속 만들게 됐다. 조금은 슬픈 상황이기도 하지만.

카메라와 사랑에 빠졌을 땐 카메라와 대화하며 여러 가지 것들을 찍었다. 두 번째 장편 영화를 만들 때쯤엔 호텔 방에 늘 카메라를 두고 지냈다. 강박적으로. 그 다음엔 배우와 사랑에 빠졌는데 사실 첫 영화 찍을 때만해도 배우들은 그저 감독에게 조종당하는 인형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배우와는 밥도 같이 먹지 않았다. 배우들은 자기가 어떻게 보이는지에만 정신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배우들도 영혼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배우에게도 인격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소중한 이들을 만났다. <검은 고양이>에서 함께 작업한 하비 키이틀은 아주 멋졌다. 배우 중에선 그와 처음으로 같이 밥을 먹었다. 아름답고 똑똑한 여배우들도 여럿 있었다. 제시카 하퍼와 함께 한 <서스페리아>를 시발점으로 여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영화를 만들었다. <페노미나>의 제니퍼 코넬리는 당시 13살이었다. 영화 속에서 내가 찾던 순수를 완벽히 구현했다. 또 <페노미나>의 첫 장면에는 나의 딸 피오레도 나온다. 딸과 작업한 첫 영화다. <페노미나>에는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영화에 수백만 마리의 벌레가 필요했다. 영화 시작하기 6개월 전부터 로마에 있는 큰 별장에서 벌레를 길렀다. 난방을 세게 틀어놓고 고기 덩어리를 갖다 놓았더니 금세 수백만 마리의 벌레가 모였다. 그런데 촬영장소가 스위스여서 로마에서 기른 벌레를 스위스로 옮겨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 트럭에 벌레를 잔뜩 싣고 가다 스위스 국경에 도착했는데 통과시켜주지 않았다. 3일 동안 국경에 붙잡혀 있다가 정부의 도움을 받아서야 겨우 통과했다. 벌레 얘기를 하자면 정말 끝도 없다.

딸 아시아와는 4편의 영화를 함께 찍었다. 아마 딸을 주인공으로 해서 4편의 영화를 만든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딸과 나 사이엔 강하고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게다가 14살부터 31살에 이르기까지 딸이 카메라 앞에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흥미로웠다. 오늘 두시간 가까운 시간 함께 하며 내 영화 경력과 취향 등 모든 걸 얘기한 것 같다. 옷만 벗지 않았다 뿐이지 전부를 보여줬다. 원하면 여기서 옷도 벗을 수 있을 것 같은데.(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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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방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