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을 염두에 두고 봐 달라.” 친절한 감독님이시다. 5월 6일 메가박스10관 ‘시네마스케이프 단편1’ 상영 전. 섹션 내 <나쁜 여자>를 연출한 싱가포르 출신의 코 순 감독은 무대 인사에 올라 관객들에게 관람 포인트를 미리 알려주었다. 마치 자신의 작품이 의도와는 다르게 전달될 수 있음을 감지라도 하듯 말이다.
듣기 거북한 신음소리, 음란한 내용의 이야기, 피로 물든 토끼인형, 공중을 날아다니는 아기마네킹 등 다양한 상징적인 이미지들이 <나쁜 여자>를 가득 채운다. 그 이미지들은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싶은 주인공 젠의 불안한 마음을 대변한다. 다소 상징적인 장면들이 많아서 그런지, 역시 첫 질문은 “영화를 만들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다. 코 순 감독은 “같은 여성인 프랑스의 클레르 드니 감독의 <네네뜨와 보니>(1996)를 본 게 출발점”이라며 “안타까웠던 것은 싱가포르가 심의기준이 엄격해 일부를 무지화면으로 봤다. 그런데도 이야기에 빨려들었다”고 말했다.
감독의 무대인사 코멘트에 대한 질문이 당연히 나올 줄 알았다. “영화의 페미니즘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게 두 번째 질문. “싱가포르의 심의기준은 폭력에는 관대하고, 섹스에는 엄격하다. 그게 참 웃기지 않냐”며 코 순 감독은 “계속되는 섹스와 폭력을 점점 더 새빨갛게 변하는 토끼인형에 비유했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이미지에 대한 질문은 계속되었다. 세 번째 질문은 “토끼슬리퍼는 무엇을 상징하냐”다. 그녀는 “대학면접 장면에서 교수들은 겉으로는 고상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속물적인 행동들을 보여준다. 갈수록 외양이 더러워지는 토끼슬리퍼를 통해 그것을 풍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원시원한 옷차림에, 씩씩한 미소를 날리는 등 시종일관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줘서일까. 관객과의 대화가 끝난 뒤에도 코 순 감독은 한참동안 관객들에게 둘러싸여 사인공세를 받았다. 그녀 역시 자신에 대한 많은 관심이 싫지는 않은 모양인지, 관객들과 함께 상영장 안에서 미처 하지 못한 대화들을 이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