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Rain 감독 파울라 헤르난데스 아르헨티나|2007년|110분|35mm|컬러
유리창 위로 비가 떨어진다. 사위는 슬픔에라도 잠긴 듯 온통 눅눅하다. 극도로 정체된 도로. 여인이 홀로 타고 있던 차 안에 불쑥 침입자가 끼어든다. 손에 상처를 입은 채 쫓기던 수상쩍은 남자를, 그녀는 받아들인다. 의외라고 해도 좋을 만큼 순순히. 남자의 이름은 로베르토. 그는 며칠 전 30여년 만에 고향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돌아왔다. 알바라는 여인은 별 이유없이 그를 호텔까지 데려다주는 호의를 베푼다. 비밀을 감춘 그들은 그렇게 헤어지지만 우연히 다시 만날 것이다.
<비>는 상처 입은 두 사람이 그 치유법을 찾아내는 과정을 좇는 영화다. 로베르토는 어린 시절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사라져버린 아버지를 여전히 원망하고 있고, 알바는 9년간 함께한 애인과 헤어진 뒤 모든 걸 내팽개친 채 도망쳐나왔다. 먼저 손 내미는 건 알바다. 이별과 마주할 용기가 없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그녀에겐 대화 상대가 간절히 필요하다. 하지만 어렵게 진실을 토로한 로베르토에게조차 알바는 거짓을 고하고, 이들의 이상한 인연은 거기서 끝날 듯 싶지만 또 이어진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은 끊임없이 눈물 흘리는 고즈넉한 거리다.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 속 그것처럼 빛나는 비 내리는 도시, 서로에게서 자신의 과오와 갈망을 거울처럼 들여다본 남녀는 남은 삶을 이어갈 용기를 얻은 채 이별한다. 어쩌면 그게 비의, 마법 같은 사랑의 힘이 아닐까. 아르헨티나에서 날아온 잔잔한 멜로드라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