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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도 100배 즐기기
씨네21 취재팀 2009-04-30

전주국제영화제 10주년 기념 전주 여행안내서 <전주, 느리게 걷기>

개인적인 고백 하나. 영화를 전공한 대학시절부터 연출부, 조감독을 거친 충무로시절, 그리고 현재 <씨네21> 기자까지. 영화와 함께 한 지난 10년 동안 전주국제영화제는커녕 전주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아니, 어떻게 한번도”라며 전주국제영화제 조지훈 프로그래머는 핀잔을 주었고, 스스로도 신기하고도 이상했는지 “왜 가지 않았을까”하며 곰곰이 생각해봤다. 전주가 싫어서? 프로그램이 마음에 안 들어서? 와 같이 남들에게 설명하기 편한 이유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딱히 그런 것도 없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어쩌다가, 살다보니 그렇게 됐다”고밖에. 이처럼 무신경한 내게 A선배 기자는 “음식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가보지 못해 알 리 없는 나는 선배의 말이 가슴 깊이 와 닿지는 않았다. 적어도 <전주, 느리게 걷기>를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혀가 기억하는 전주

<전주, 느리게 걷기>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10주년을 기념해 발간한 전주 여행안내서다. 여행서라면 최근 시중에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누구나 저자가 될 수 있는 만만한(?) 분야 아닌가. 하지만 이 책을 여느 여행서들처럼 딱 개인 블로그의 글을 Ctrl+V한 듯한, 그렇고 그런 수준으로 보았다간 큰 코 다친다. 전주토박이인 저자(극작가 최기우, 라디오 음악프로그램 작가 박연실)들은 독자로 하여금 마치 그곳에 함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게 한다. 그래서 이들이 들려주는 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한옥마을의 한 골목길을 산책하고 있는, 혹은 가맥(가게에서 파는 맥주)에서 거나하게 취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만큼 정보전달이 생생하고 꼼꼼하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토박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라 신뢰할 수 있다는 게 큰 강점. 자, 지금부터 <전주, 느리게 걷기>를 통해 ‘천년고도’ 전주를 간략하게 엿보자.

맛의 고장. 전주하면 이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전주음식은 맛있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맛집들도 많다. 그 중에서도 ‘전주비빔밥’은 오래 전부터 전주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인식되어 왔다. “아무 데나 들어가세요. 전주엔 비빔밥을 못 하는 데가 없어요”라곤 하지만 저자는 “전주비빔밥의 이름에 값할 만한 음식점은 드물”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진짜’ 전주비빔밥은 진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물 대신 양지머리 육수를 부어 지은 밥에 콩나물을 넣어 만든 콩나물밥에 비비는 것이다. ‘전주비빔밥’하면 가장 먼저 오르내리는 ‘가족회관’, 저자가 “역시 전주는 비빔밥이군”하며 감탄을 하며 먹는다는 ‘성미당’ 등 유명한 비빔밥 집이 영화의 거리에 많이 모여 있다고 하니 한 끼 식사로 해결하는 것도 좋은 선택일 듯 싶다.

비빔밥만큼 유명한 ‘백반, 한정식’도 빼놓을 수 없다. 손맛·장맛이 좌우하는 전주의 백반집은 입소문으로 유명해진다고 한다. 일부러 간판을 찾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외관에, 서비스 역시 그렇게 친절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입 안에 착착 감기는 장맛은 비길 데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전주 시내 골목골목엔 맛있는 가정식 백반집들이 많이 숨어있지만 저자는 영화의 거리 KT&G 사거리에 있는 ‘은행집’을 “가정식 백반의 기준에 가장 부합하는 집”으로 꼽는다. 그 밖에도 콩나물국밥, 오모가리탕, 칼국수, 돼지고기 양념구이 등 맛집들이 하도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전주에 가면 ‘뭘 먹어야 할지’ 행복에 겨운 고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옥마을 걷기의 매력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길을 걷지 않는다. 빨리빨리 움직이기 위해 교통수단을 이용함은 물론이고,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할 겨를이 없다. 즉, 길 위에선 더 이상 사유하지 않게 됐다는 말이다. 전후 빠른 성장을 해온 대한민국의 도시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전주는 느린 걸음으로 둘러보며 걷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다. 시민들과 공존하는 문화재가 가까이 있고, 작고 여유로운 길들이 많다는 게 그 이유다.

그 중에서도 한옥마을을 걷기를 추천한다. 한옥마을은 삼사십 분 정도면 다 돌아볼 수 있는 아담한 마을이다. 하지만 각기 다른 색깔의 거리로 구성되어 있어 산책하기가 심심하지 않다. 아주 고요한 산책을 하고 싶다면 오목대 뒤쪽으로 있는 ‘쌍샘길’로 향하자. 쌍샘길은 샘이 있던 자리라 해서 ‘양사재’를 거쳐 오목대로 오르는 곳에 있다. 향교를 중심으로 앞뒤로 뻗은 골목길인 ‘향교길’은 미로 같은 즐거움을 준다. 막다른 길을 처할 때도, 예상치 못한 넓은 길로 이어질 때도 있다. 관선길과 은행나무길 사이의 골목인 ‘토담길’에는 예쁜 꽃들이 들어있는 오래된 흙담이 있다. 경기전 후문 쪽으로 펼쳐진 ‘동문3길’에 가면 오래된 건물들을 만날 수 있다. 일제 때 건물이라는 ‘춘추당’과 그 옆에 있는 ‘명가의 사진’은 마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듯한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빛바랜 빨간 벽돌담이 매력적인 성심여고의 골목도 매력적이다. 동문 3길의 반대편에 있다. 계속되는 영화 관람으로 지친 마음을 일상의 소소한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씻어내는 건 어떨까. 아니면 봤던 영화를 산책하면서 사유하는 것은 어떨까. 거기서부터 진짜 영화감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편, 영화 로케이션에 관심 있는 관객들은 촬영지를 찾아가 보는 것도 괜찮겠다. <약속>의 주인공들이 사랑을 약속하던 장소인 전동성당, <YMCA야구단>의 야구장면을 촬영한 향교의 마당, <타짜>에서 조승우가 창문과 창문을 넘어 유유히 빠져나가는 장면을 찍은 동문거리 등 수많은 한국영화들의 흔적이 전주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