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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또 하나의 영토다
김성훈 2008-10-07

‘AND 사운드 마스터클래스’ 진행한 다니엘 데애, 기쿠치 노부유키

1927년 앨런 크로슬랜드 감독의 <재즈싱어> 개봉은 당시 할리우드를 비롯한 세계영화산업에 큰 충격을 안겼다. 영화에 소리가 도입된 것이다. 세계최초의 유성영화 <재즈싱어>의 개봉과 함께 무성영화 스타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스튜디오 시스템은 새로운 기술(사운드)에 의해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처럼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운드’가 연출, 촬영, 조명 등 다른 파트에 비해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은 것은 사실. 그런 의미에서 10월4일, 6일 양일간 열린 사운드 엔지니어 다니엘 데애와 기쿠치 노부유키의 ‘AND 사운드 마스터클래스’자리는 가치가 있었다.

프랑스 출신의 다니엘 데애는 샹탈 아커만의 <1980년대>, 아녜스 자우이의 <룩 앳 미> 등 프랑스 및 유럽 감독들의 사운드 엔지니어로 활동해 온 사운드 분야의 거장. 특히, 그는 올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새벽의 경계>를 연출한 필립 가렐 감독의 오랜 파트너이기도 하다. 10월4일 열린 그의 강의는 “사운드는 매우 흥미로운 분야인데,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기술적인 도구로만 다루려고 한다. 연필이 있다고 해서 글을 잘 쓰는 건 아니잖나”는 음향에 대한 사람들의 몰이해를 언급하면서 시작되었다. 영화라는 매체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결합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운드를 이미지에 종속시킨다. 이미지를 통해서 사운드를 (듣는 것이 아닌) ‘바라본다.’ 이를 두고 그는 “영화는 한 가지 시각에서 바라보는 매체가 아닌 여러 방향에서 바라보는 매체다. 이미지가 독립적인만큼 사운드도 고유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며 사운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사운드의 영역은 간단하다. 이미지에 어떤 사운드가 충돌하는가에 따라 이야기의 색깔,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정보가 달라진다는 것. 가령, 관객들은 영화를 볼 때 ‘화면 밖의 소리’를 통해 다음 장면을 예상하거나 눈에 보이는 이상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미지와 사운드 사이에 정해진 규칙이나 답은 없다”고 말한다. 중요한 점은 장면을 구성할 때 이미지와 사운드가 어떤 관계를 맺을지 먼저 고민해봐야 된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강연에는 영화 팬들은 물론이고 학생, 국내 외 사운드업계 종사자 등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감독과 사운드 엔지니어 사이에 이견이 있을 경우에 어떤 식으로 조율 하는가”라는 한 관객의 질문에 그는 “어디까지나 감독이 결정권자다. 그리고 프리프로덕션 과정 때부터 감독과 함께 ‘음향글쓰기’에 대해 의견을 계속 나누면서 서로에 대한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다니엘 데애에 이어 10월6일 마스터클래스를 가진 기쿠치 노부유키는 일본 최고의 사운드 엔지니어다. 그는 일본의 전설적인 다큐멘터리 감독 오가와 신스케와 함께 오랫동안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왔다. 사운드에 관해 정식적으로 배운 적이 없는 그는 “이번 강의는 이론적인 부분이 전혀 없으니 그것을 기대하고 오신 분들은 미리 실망하길 바란다”라는 말로 강의를 열었다. 그가 말하는 사운드는 영화 속에서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똑같은 소리를 듣더라도 사람들마다 다르게 들리는 것처럼 그는 “과연 소리가 소리로서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어쩌면 소리는 사람의 의식 속에서 정립된 것 일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현장에서 동시녹음을 할 때, ‘화면 안 사운드’뿐만 아니라 현장주변의 소리(구급차, 공장소음 등)를 모두 녹음한다. 그리고 편집 시 인터뷰의 내용, 인물의 심리에 따라 적합한 사운드를 선택한다. 즉, 그가 바라보는 현실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재구성된 현실이다. 하지만 그는 이것이 다큐멘터리의 진실을 해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화면 안에 존재하는 소리가 전부 진실은 아니다. 화면 안의 소리가 이야기의 핵심을 해친다면 그것은 담아낼 필요가 없다.” 즉, 중요한 것은 ‘자신이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이다. 그는 관객들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자신이 최근에 작업한 중국의 <빙아이>(감독 옌 펑,2007)의 장면들을 보여주면서 설명한다. 주인공 빙아이가 아들을 학교에 보낼 때 카메라는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그는 이 장면을 두고 “빙아이의 감정이 너무 강조됐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바람소리를 추가해 인물의 감정을 분산시켰다”고 한다. 한편, 그는 DV매체로 1인 제작을 하는 학생, 다큐멘터리 감독들에게 “사운드 작업에 있어서 여러 가지 방법론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의 상황에 따라 적합한 감각들을 찾는 것”이라는 조언으로 이날 강연을 마무리했다.

사진 박승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