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HIFFS Daily > 2회(20008) > 영화제소식
영화를 보다 자연스럽게 만드는 힘
이주현 2008-09-10

세미나 ‘무성영화 음악의 모든 것’, 영화 속 음악의 역할과 제작과정 소개

“무성영화 음악의 모든 것을 알려주마!” 무성영화 음악 작곡가이자 연주자인 귄터 부흐발드와 <청춘의 십자로>의 박천휘 음악감독이 무성영화 음악의 참맛을 알려주겠다고 나섰다. 9일 오후 2시 명동 아트센터에서 열린 ‘무성영화 음악의 모든 것’이란 거창한 제목의 세미나가 그것이다. 지세연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의 진행으로 열린 이 세미나에서는 정말 무성영화 음악의 모든 것을 맛볼 수 있었다. 귄터 부흐발드는 자신이 직접 고른 영화와 음악을 소개하며 영화와 음악의 만남에 대해 강연했고, 박천휘 음악감독은 <청춘의 십자로>의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공연 장면의 일부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음악과 영상을 활용한 프리젠테이션에 관객들은 지루할 틈이 없는 듯 보였다.

귄터 부흐발드는 다양한 인용들을 즐겨 사용했다. “음악은 느껴야만 하는 것이며(막스 슈타이너), 영화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끌어내서 표현하는 일이며(알프레드 히치콕), 영화음악을 만드는 일은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작업 과정(버나드 허만)이다.” 음악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설명하는 일은 무의미하다는 말일까. 그는 말로 설명하는 대신 음악을 들려줬고 영화를 보여줬다. “<카사블랑카>에서 주인공 릭이 피아노를 치며 ‘As Time Goes by’라는 노래를 부를 때 카메라는 릭의 머리 위에서 피아노치는 릭을 비춘다. 그러면 노래의 힘에 이끌려 우리는 점점 릭의 내면으로 들어가게 된다. <시민 케인>에서는 점점 소원해지는 부부의 식어가는 감정이 단 2분만에 음악으로 표현된다.” 그는 영화와 영화음악이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영화음악가가 겪을 법한 딜레마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마지막 장면은 충분히 슬프지만 너무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 음악이 의도적으로 감정을 건드리면 거부감이 생긴다. 음악은 시각적 체험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감정을 장악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보다 영화음악이 더 돋보여서는 안된다.” 귄터 부흐발드는 이날 흥미로운 업계의 비밀 하나를 알려줬다. 무성영화 음악연주가 활발한 독일에서는 <영화음악의 일반적 적용>이라는 무성영화 음악 사전같은 책이 있어서 “슈퍼에서 물건 고르듯이 사전에서 음악을 고를 수 있다”는 것이다. “슬픔을 표현하는 음악, 기쁨을 표현하는 음악들이 책에 기호로 쓰여 있다. 작곡가들은 영화의 장면에 맞춰 그 음악들을 가져다 쓰면 된다.”(웃음)

귄터 부흐발드의 꼼꼼한 프리젠테이션이 끝나자, 박천휘 음악감독이 마이크를 건네 받았다. “엄밀히 따지면 <청춘의 십자로>는 무성영화라기보다 ‘변사 공연’이다. 변사라는 인물이 영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해석한다. 그래서 무성영화라는 특별한 인식을 가지고 작업하진 않았다.” <청춘의 십자로>는 1934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박 감독은 여러 자료들을 바탕으로 당시의 음악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악기는 무엇인지, 박자는 어떻게 해야할지를 고민했고, 결국 아코디언과 바이올린으로 시대를 표현하고 신파를 극대화하기로 했다. 말하자면, 모던과 신파가 공존하는 음악이다.” 필름의 일부가 소실되어 영화의 이야기는 중간에 툭 끊기지만 박천휘 감독은 상상력을 통해 소실된 이야기를 음악으로 복원했다며 시골에 있던 영복이 갑자기 서울로 상경하는 장면을 보여줬다. 관객들은 음악 덕분에 영화의 이음새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광경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박천휘 음악감독은 10일 남산 한옥마을에서 있을 <청춘의 십자로>공연에 귄터 부흐발드를 초대했다. 귄터 부흐발드는 미국의 영화음악가 아론 코플랜드의 말을 빌려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귀마개를 벗고 영화에 귀를 열어달라!”

사진 함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