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순수와 청순의 아이콘이었던 홍콩배우 양채니가 충무로를 찾았다. 그녀는 <양축>(1994), <동사서독>(1994), <타락천사>(1995)등의 작품에 출연하며 90년대 홍콩영화의 전성기를 보낸 대표적인 여배우다. <양축>에서 보여준 성질 급한 남장여자나, 실연의 아픔 때문에 처음 만난 남자에게 무턱대고 기대는 여자를 연기했던 <타락천사>에서의 모습들은 90년대에 성장기를 보낸 한국남성들에게도 잊지 못할 장면일 것이다. 이번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의 객원 프로그래머로 선정된 그녀는 관객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로 <양축>과 최근작인 <방콕 데인저러스>를 꼽았다. 이 영화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은 말 못하는 약사다. 배우로서 중요한 무기인 언어를 사용할 수 없어 연기에 제한이 있었을 것 같았지만 그녀는 “말을 못하는 배역이기 때문에 말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배우에게는 언어만큼이나 얼굴도 중요한 법. 한때 뭇 남성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청순한 외모는 그녀의 연기에 어떤 도움을 주었을까. “어차피 연기할 때는 이야기에 맞춰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외모가 득이 되거나 방해가 되는 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생활 속에서 사람들에게 편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아 만족하고 있다.”(웃음) “캐릭터에 진심을 갖고 몸과 마음으로 소통하고 싶다”는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을 비우는 일”이란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내 생각과 습관을 없애는 것이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하려 한다. 그래야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체계적인 연기철학을 가진 그녀는 왜 아직까지 홍콩배우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두기봉 사단에 합류하지 않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부터 준비하겠다. 당신이 두기봉을 만나서 ‘왜 양채니와 함께 작업하지 않느냐. 그녀는 벌써 준비하고 있다더라’고 얘기해 달라.”(웃음)
배우로 진화한 90년대 ‘청순’ 아이콘
객원 프로그래머로 충무로 찾은 배우 양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