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 섬머> Dry Summer 메틴 에륵산/터키/1964년/85분/흑백/공식초청부문
넓은 대지를 경작하는 욕심많은 형 오스만은 동생 핫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을 수로를 독점한다.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마을 사람들은 법에 호소하지만 결국 수로는 오스만의 차지가 된다. 핫산은 씩씩한 아가씨 바하와 결혼한 뒤 함께 막힌 물길을 트려고 하지만 오스만은 그때마다 두 사람을 막아선다. 오스만과 마을 사람들의 갈등은 급기야 총격전으로 이어지고, 이 과정에서 오스만은 살인을 저지른다. 땅을 누군가는 지켜야 한다는 오스만의 꾐에 핫산은 형의 죄를 대신 뒤집어 쓰고 감옥으로 향하고, 오스만은 핫산의 아내까지 범하려 든다. <드라이 섬머>는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비롯해 성경의 풍부한 잠언들을 끌어와 인간의 끝없는, 그래서 폭력적인 욕망을 낱낱이 전시한다. 소중한 아내까지 빼앗기고 나서야 핫산은 자신의 무기력을 딛고 일어서게 되고 골리앗 같은 형 오스만의 탐욕과 맞선다.
터키영화 하면 맨먼저 투사 일마즈 귀니를 떠올린다. 하지만 일마즈 귀니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진 건 아니다. 절망적인 현실을 민속 고유의 목소리로 전하려 했던 메틴 에륵산이나 아티프 일마즈 등과 같은 선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메틴 에륵산의 <드라이 섬머>는 1960년대 터키영화 형성기를 대표하는 작품. 1960년대 터키영화계는 “연간 생산편수가 300편에 달했지만” 이른바 ‘예실캄 영화’라고 불리웠던 오락물이 대부분이었고, 메틴 에륵산 또한 예실캄 영화를 주로 만들었던 감독이었다. 하지만 <드라이 섬머>를 통해 터키영화와 메틴 에륵산은 좀 더 나아간다. 당시 터키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드라이 섬머>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출품됐고 결국 1964년 금곰상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때의 ‘괘씸죄’로 인해 <드라이 섬머>는 오랫동안 상영되지 못했고, 프린트 또한 40년 넘게 유실되는 비극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번 상영에는 마틴 스코시즈가 이끄는 세계문화재단의 도움으로 2008년 5월 복원된 프린트가 관객들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