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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만으로 먹고살기 힘들어~
이영진 2008-09-07

충무로 암흑의 70년대, 부업전선에 뛰어든 배우들

“비오는 날 위해 벌어야 한다.” 1961년 6월7일 <동아일보>는 선셋대로에 레스토랑과 의상점을 연 딘 마틴과 토니 커티스를 비롯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목장, 아파트 임대업, 유전사업 등에 손을 뻗쳐 짭짤한 수익을 거뒀다는 가십 기사를 실었다. “그들은 과거와 같이 사치와 현란한 꿈에만 갇혀 있지는 않다. 스타가 인기를 잃었을 때 어떻게 초라해진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그 시절 충무로는 어땠을까.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부업을 옆구리에 낀 배우들은 많지 않았다. “이제 다방이나 차려서 조용히 살래요.” 현역 시절의 명성을 앞세워 은퇴 뒤에 다방이나 카페를 차리는 정도가 외도의 전부였다. 요정을 운영하는 양훈, 양장점을 개업한 전현주, 미장원을 연 김의향 정도. 저잣거리에 나선 이들은 대개 조연배우들이었다. 가케모치 40편 출연으로 한해에 많게는 2천만원 넘는(당시 월급쟁이 평균 월 소득은 1만원 정도였다고 한다)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데 주연배우들이 굳이 부업을 벌일 리 없었다.

하지만 “800만원짜리 무스탕을 몰고 다니던” 스크린 스타들의 세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1971년 5월 <영화잡지>에 실린 ‘인기스타들의 부업을 찾아보니…’라는 제목의 기사는 “하루아침에 가장 위험한 직업을 갖게 된” 배우들이 부업 전선에 뛰어들어 “장래대비 눈치작전”을 펴고 있다고 적고 있다. 과거와 달리 주·조연 가릴 것 없이 딴 주머니 차기에 나선 것이다. 신영균은 다방, 다과점, 극장사업 등으로 사세를 확장했고, 윤정희 또한 충무로에 통닭구이 경양식 살롱 ‘희의 집’을 차렸다. 김지미도 뒤질세라 타베트라는 이름의 경양식 살롱을, 박노식은 ‘시네마 다방’과 ‘고고 양복점’을, 최지희는 웨스턴 스타일의 스탠드 바와 중국집 동경반점을, 그리고 남정임은 주유소를 개업했다. 이 밖에 주선태는 여관, 김희갑은 호텔사업을 펼치는 등 부업없는 배우가 없을 정도였다.

특히 고무신 장사에 뛰어든 남궁원은 충무로 안팎에서 화제를 모았다. 화신백화점 뒤편에 경성고무 서울 총판 및 직매센터를 마련한 그는 직접 자신의 팬들에게 ‘부로마이드’를 나눠주는 판촉 활동까지 벌였다. “직매센터 설립의 주목적이 저를 아껴주시는 팬들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배우와 팬이 대화를 나눌 만한 장소가 없다는 것이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영화잡지>와의 인터뷰처럼 고무신 직매장을 운영하게 된 까닭이 “팬과의 거리를 좁히고 소비자 보호를 위함”일까. TV와 레저라는 예기치 못했던 복병에 밀려 1968년부터 전국 개봉관 기준 관객 수가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앞으로 닥칠 암흑의 1970년대를 예견하고 배우들이 자구책 마련에 나선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