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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이 하사한 이름을 받들라
이영진 2008-09-05

1960년대 배우들의 스타되는 법

여배우가 되려면 이렇게 하라! <영화잡지> 1964년 1월호 만평은 ‘여배우가 되는 열두 계단’을 소상히 적고 있다. 자가(自家) 매니지먼트 공식 열두 가지를 보자. 학교는 반드시 중퇴한다→서투르게(라도) 유행을 따르고 이야기 끝마다 영화배우를 거론한다→무조건 정형수술을 해둔다→비록 촬영이 없더라도 ‘뷰우티 케이스’를 들고 충무로를 하루 종일 왕복한다→음성은 동시녹음을 할 수 없도록 쉬게 만든다→우선 배우의 가방모치로 들어간다→반드시 택시를 탄다. 하루에 두번 이상 옷을 갈아입는다. 또 돈이 없더라도 선글라스는 꼭 사고 언제든지 벗지 않는다→담배와 술과 댄스는 배워둔다→감독이 콘티를 짜는 호텔 옆방에 자리잡고 스탭들이 모일 때마다 미소를 잃지 않는다→개성을 인정받기 전까지는 무조건 노출증이라는 열병을 앓아야 한다→아낌없이 주련다라는 마음을 행동으로 암시해줄 수 있는 연기력이 필요하다→이렇게 해서 조금 유명해지면 반드시 스캔들을 만든다. 단, 동거 생활까지는 하되 절대로 결혼식을 올려선 안 된다.

부와 명예를 동시에 쥘 수 있다는데 어디 12계명뿐이겠는가. 1960년대 중반, 제작 붐으로 불타오르는 충무로를 향해 골드러시 했던 배우 지망생들의 금언집엔 “촌스런 이름을 하루빨리 버릴 것”이라는 것 또한 포함되어 있었고, 배우지망생들은 새 이름 받아들기 바빴다. 신필름 소속 배우였던 강신영이 신상옥 감독의 성을 따서 신성일이 됐고, 남정임도 이광수 원작의 <유정>에 출연하면서 김수용 감독으로부터 극중 주인공 이름을 고스란히 전해받았다. 김수용 감독은 “내가 못 지어주는 경우에는 작명소에 가서 이름 바꾸라고 내가 돈을 주기도 했다니까”라고 전한다. 1967년 <춘향> 오디션에서 1725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을 따낸 홍세미는 행사 주최자였던 세기상사의 ‘세’자에 김지미의 ‘미’자를 따른 케이스. 정인식은 좀처럼 1인자의 자리를 내주지 않았던 신성일의 후광을 조금이라도 얻으려고 가운뎃 자만 바꿔 신영일로 활동했다. 데뷔 당시 <나오미의 꿈>이라는 노래가 히트를 해서 이름을 바꾼 나오미, 조문진-정인엽-최하원-전우열 등 4명의 감독이 “공동으로 픽업해서” 각 감독의 이름에서 한자씩 따온 조인하 등 작명 스토리가 어디 한둘이랴. 한편 정진우 감독으로부터 신숙이라는 새 이름을 얻어 데뷔한 이승희는 새 이름으로 그닥 재미를 못 보자 이후 <20인의 여도적>(1971)에 출연하면서 감독이자 제작자였던 이지룡씨의 뜻을 따라 다시 이승희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