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이 청바지 안 입으면 뭐라고 한다니까” 자식의 강요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입었다고 하지만, 이처럼 물빠진 블랙진을 멋지게 소화하다니. 놀라지 마시라. 애드씨네코리아 복철 대표, 올해 일흔 셋이다. “명보극장에서 일할 때 신상옥 감독님이 나보고 배우 해보라고 했다고. 그 힘든 일 왜 하냐고 하고 뒤로 빠졌는데 나중에 신성일이 그 자리에 들어왔지 뭐야, 하하하” 명보극장, 스카라극장 등에서 오랫동안 영화 홍보, 포스터 도안을 맡았던 복 대표는 충무로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찰턴 헤스턴, 버트 랭카스터, 로버트 테일러 다들 쟁쟁했지” 1955년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친구집이 있던 충무로에 놀러갔다가 “엄청나게 큰 수도극장의 간판”에 빠져들었고, 이후 그의 인생 반경은 충무로를 단 한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대신 인쇄소를 택한 그는 영화 신문광고 도안을 돕다 그의 손재주와 눈썰미를 높이 산 선배 영화인의 도움으로 극장 선전부장이 된 것이다.(인쇄소에 들어가기 전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동대문파의 거두 이정재의 후계자 아래서 돈 심부름을 하다 혼쭐날 뻔한 적이 많았다는 에피소드도 건냈다) 마케팅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에도 그가 선보인 영화선전 기법은 놀라운데, 1970년대 이미 그는 영화제목을 새긴 홍보용 티셔츠를 팔았고, 1980년대에는 극장 앞에서 TV를 통해 예고편을 선보였다. “그때는 열정이 대단해서 꾀도 많았다”고 회고하는 복 대표는 수입홍보사를 차려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지만 “요즘은 배짱이 약해져서 영화 수입을 통 할 수가 없다”고 덧붙인다. “초대장 챙기는 건 몰랐지. ID카드만 갖고 가면 개막식장에 그냥 들어갈 줄 알았다고. 별 수 있나. 그냥 돌아왔지, 뭐. 개막식은 아침에 뉴스에서 봤어. 허허.” 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바람에 하루 허탕을 쳤지만 그는 그닥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다. “내 하루는 지금도 매일 매일이 영화인데,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