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는 먹을 것도 지천이다. 충무로의 영화인들로 들썩였을 맛집들은 아직도 추억의 맛을 자랑한다. 이제는 충무로가 아닌 한강 이남으로 내려간 영화인들조차 그 맛을 잊지 못해 종종 충무로를 찾을 정도. 영화제를 즐기는 틈틈이 맛집들을 순례해보자. 혹시 모른다. 당신이 사랑하는 배우와 겸상을 하게 될지도.
을지면옥(을지로 3가역 5번 출구 앞)은 ‘평양냉면 4대 천황’중 하나다. 고춧가루가 살짝 얹혀있을 뿐, 이렇다 할 양념도 없이 밍밍하지만 은은한 메밀향을 맡으며 가느다란 면발을 들이켰을 때의 쾌감은 비단 여름 뿐만 아니라 사시사철 한결같다. 서울의 맛집 중 가장 허름한 출입문을 갖고 있지만, 오히려 낡은 외관이 세월의 격랑 속에서도 맛을 잃지 않은 냉면의 공력을 엿보게 한다. 충무로에서 맛볼 수 있는 평양냉면이라면 필동면옥(대한극장 뒤편)도 빼놓을 수 없다. 평양냉면 본래의 맛과 서울화된 맛의 균형을 가장 잘 지킨다는 평을 받는 한편, 서울의 평양냉면집 중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제육과 집에 싸가고 싶어질 만두가 있다. 중앙극장 맞은 편에 위치한 평래옥도 냉면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소문난 맛집. 닭과 꿩으로 만든 육수의 평양냉면, 초계탕, 만두 등이 실향민뿐만 아니라 20대 청춘들의 입맛도 만족시킨다.
냉면으로 점심을 상큼하게 때웠다면, 저녁은 거하게 먹어보자. 충무로역에서 명보극장 방향으로 100m 지점에 위치한 진고개는 1963년 문을 연 이래, 충무로를 대표해온 평안남도식 한정식집이다. 충무로 2가 뒤편에 있던 고개의 이름에서 유래한 진고개는 일본인들의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이라면 진고개의 대표메뉴인 게장 백반 한그릇에 보쌈김치를 시켜서 밥을 비우자. 여윳돈이 있다면 호사로운 북쪽 음식의 대명사인 어복쟁반을 권한다. 진고개 옆 월드오락실 골목에 위치한 부산 복집도 충무로 ‘인쇄골목’ 일대의 식당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인쇄골목의 신화를 이루어낸 거친 사내들의 단골 해장메뉴인 복지리는 물론이고 맛내기에 까다롭다는 복매운탕도 이 집에서 먹으면 진짜 복을 먹은 기분이 든다. 저렴하고 가벼운 식사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극동빌딩 뒤편에 위치한 사랑방 칼국수를 추천한다. 충무로의 맛집이 몰려있는 극동빌딩 뒤편에서 칼국수 하나로 40년을 버텨온 집이다. 양은 냄비에 가득 담겨 나오는 진한 멸치 국물을 기본으로 고춧가루, 김, 통깨, 쑥갓, 마늘 등이 듬뿍 들어있다.
보고 싶은 영화도 다 보고 먹을 것도 다 먹었는 데, 아쉽기 그지없다면, 해산물을 안주삼아 술배를 채울 수도 있다. 쭈꾸미 불고기(충무로역 5번 출구 농협 옆쪽 골목)는 매운맛과 얼큰함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충무로의 명물이다. 신선한 해산물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싶다면, 필동 CJ인재원 근처의 필동해물을 찾아가자. 저렴한 가격에 이만큼의 신선도를 지킬 수 있는 이유는 사장님의 고집 때문이란다. 물론 충무로의 명물인 ’골뱅이’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충무로 골뱅이의 역사와 함께 자라온 식당이 동아 골뱅이(충무로역 6번 출구에서 명보극장 방향)다. 온갖 양념으로 범벅된 다른 지역의 골뱅이와는 달리, 파와 북어 그리고 골뱅이라는 심플한 공식을 확립한 곳으로도 알려져있다. 파의 확 쏘는 맛에 적당히 고춧가루 무쳐진 골뱅이의 맛에 소주도 맥주도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