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시클로> Resiklo 마크 레이스/ 2007년/ 120분/ 필리핀/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외계인의 침공으로 완전히 황폐해진 지구. 소수의 생존자들은 파라이소라고 불리는 장소에서 겨우 삶을 영위해간다. 우주를 마음대로 넘나드는 외계인들에게 맞서기 위한 생존자들의 최종병기는 고철 더미를 이용해서 만든 로봇(<매트릭스3 레볼루션>과 <자붕글>의 형제쯤 된다)이다. <리시클로>는 지난해 마닐라영화제에서 7개 부문을 휩쓸며 필리핀 자국영화의 자랑거리가 됐다. 그러나 자국의 자랑거리가 언제나 국제적인 자랑거리인 것은 아니다. <리시클로>에서 오리지널리티와 제대로 된 이야기를 찾는 건 무리다. 로봇들이 공터에서 전쟁을 벌이는 클라이맥스의 특수효과는 게임 화면에서 오려붙인 것 같고 <에이리언2>를 비롯한 80년대 할리우드 SF 활극에서 도용한 장면들도 끝없이 이어진다. 그러니 <리시클로>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일정 정도 평준화된 특수효과 기술의 덕을 입은) 제3세계 블록버스터가 어떻게 할리우드의 과거를 카피하며 장르영화의 토대를 배워가는지 유심히 살펴보는 것, 그리고 전대물과 80년대 B급 SF영화와 비디오 게임을 마구 섞어놓은 이 혼성모방짬뽕영화의 의도하지 않은 키치함과 캠피함을 낄낄대며 즐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