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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위대함이 만든 SF”
정재혁 2008-07-22

<오직 사랑으로> 히로키 류이치 감독

히로키 류이치 감독이 시간을 과거로 돌린다고 했을 때 그건 복잡한 과학으로 입혀진 SF물이 아니다. 시간을 돌리는 대신 시력을 잃는 여자의 이야기 <오직 사랑으로>는 남자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홀로 새롭게 쓰여진 시간 속에 외롭게 살아가는 여자 이야기다. 언제나 그랬듯 여자가 주인공이고 그 여자의 넓은 품은 황량한 느낌의 부두를 부드럽게 감싼다. 7월16일 개막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선 개막작 <유어 프렌즈>를, 부천영화제엔 <오직 사랑으로>를 들고 내한한 히로키 류이치 감독을 만났다.

-<오직 사랑으로>는 어떻게 구상했나. =TV 드라마 시리즈 기획의 연장에서 출발한 영화다. 주인공이 초능력을 가진다는 설정의 시리즈 드라마가 있다. 코미디, 호러, 러브 스토리 장르는 다양하다. 나는 거기서 러브 스토리의 양식을 가져와 영화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초능력이란 것도 모두 다 다른 종류인가. =그렇다. 다 다른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는 시간을 돌린다는 설정을 썼는데 사실 그건 뭐라도 상관없었다. 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테마였기 때문이다. 단지 시간을 돌린다는 거에 꿈, 판타지가 있겠거니 싶었고 그게 영화적으로도 재밌을 것 같았다.

-여객 터미널, 부두의 느낌이 인상적이다. 어디서 촬영을 한건가. =니이가타라는 곳이다. 바다가 있고, 눈이 있는 곳을 처음부터 원했다.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잘 보이지 않는 곳이랄까.

-<바이브레이터>에선 고속도로, <오직 사랑으로>에선 부두의 느낌이 인상적이다. 공간을 구상할 때 어떤 식으로 하는지 궁금하다. =글쎄…. 일단 공간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해가 지거나 뜰 때의 풍경은 가능하면 영화에 넣으려고 한다. <바이브레이터>의 경우 도쿄에서 니이가타로 가는 이야기였는데, 풍경도 도시에서 시골로 계속 바뀐다. 내 안에서도 신선하다고 생각했었고 그런 걸 시도하고 싶다.

-<오직 사랑으로>에서 여자 주인공은 초능력을 사용하는 대신 시력을 잃는다. 그 상실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면 될까. =자기가 상처받더라도 누군가를 구해준다는 것의 의미를 이번 영화에 담고 싶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불행해졌다는 건 아니다. 단지 그 행위의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

-당신의 영화에선 항상 여성의 어떤 결정이 중요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그건 남성에 대한 희생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 영화에서 그런 결정이 많았던 건 글쎄…, 그냥 우연같은데 나는 기본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마음이 넓다고 생각한다. 남자가 못하는 일도 여자는 할수 있을 거란 느낌이 든다. 남자는 엉터리고, 여자는 위대하다. (웃음)

-여자가 위대하다는 말을 인터뷰에서 자주 하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 =지금까지 내가 사귄 여자들. (웃음) 오랜 경험에서 갖게 된 생각이다. 강한 여자를 동경하기도 하고. 강하게 살려고 해도 상처받고, 강한 여자라고 해도 약한 부분은 있기 나름이다. 그런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오직 사랑으로>에서 좀 새롭다고 느꼈던 건 몇 가지의 시간축이 등장한다는 거다. 여자가 시간을 과거로 돌린다는 설정 덕에 여자는 모든 시간축에 존재하지만 남자는 특정 시간축에서만 존재하게 된다. =기본적으로는 이전에 하지 않았던 것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촬영의 방법이나 극의 설정, 캐릭터도 매번 바꿔서 하고 싶다. <바이브레이터>를 했을 때 사람들은 그게 재밌다고 했지만 나는 <바이브레이터> 한편으로 그 세계는 이미 끝난 거다. 매번 그런 걸 찍을 수는 없다. 시간축을 다르게 한 건 일단 여자가 남자를 구하기 위한 설정이었지만 그런 판타지가 있다면 스스로도 재밌겠다, 찍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IT 프로젝트(부천영화제의 장르영화제작지원 프로그램)에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바다>를 출품했다. 어떤 작품인가. =마츠에, 리스본, 히로시마, 도쿄 등 여러 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서로 다른 곳에서 동시에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그리고 싶었다.

-왜 리스본인가. =리스본은 일본에서 매우 먼 도시라는 느낌이 있다. 거기서 무언갈 찾고싶었다. 영화엔 도쿄 시모키타자와에 사는 여성도 등장하는데 그 여자는 다른 곳엔 절대 가지 않고 시모키타자와에만 있다. 어디에도 가지 않는 사람과 멀리 있는 사람 사이에 무엇이 다른가를 얘기하고 싶다.

-하마다 마리코의 음악이 중요한 모티브라고 들었다. =하마다는 인디 계열의 가수다. 마츠에에 살고있는데 우연히 공연에 갔다가 받은 느낌이 좋았다. 노래가 여러가지를 상상하게 하더라.

-16일에는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도 참석했다. =개막작 상영 때문에 갔었다. 일본 관객은 언어가 같아 직접적으로 반응을 알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번 <유어 프렌즈> 상영 이후 고등학생이 울고 있는 걸 봤다. 역시 반응은 별로 다를 게 없구나 싶었다. 그게 영화의 훌륭함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