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액션영화를 수식하는 꼬리표가 있다면 아마 ‘정두홍’일 것이다. 그는 <짝패> <달콤한 인생> <놈놈놈>등의 액션연출을 통해, 스턴트에 불과했던 한국영화 속 액션을 ‘액션예술’이라는 새 이름으로 정의하게 만들었다. ‘NAFF2008'의 일환인 환상교실에서 그는 태국, 홍콩, 일본의 유명 무술감독, 배우와 함께 한국액션을 대표하는 강사로 참여한다. 강의를 막 끝낸 정두홍 무술감독을 만나보았다.
-연출지망생을 위한 일일강사다. 실질적인 액션을 지도하는 기존 강의와는 달랐을 텐데. =처음 제안 받았을 때는 불편했다. 연출 지망생들에게 무언가 가르친다는 게 좀 낯설더라. 대신 일반인들 대상으로 무술시연 같은 걸 해보겠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막상 부딪혀보니 반응이 뜨거워 힘이 난다. 학생들 모두 열의가 대단하다.
-무술감독으로 이번 강의는 좀 더 뜻 깊을 것 같다. =참 좋은 프로그램이다. 난 그냥 몸으로 익혀왔는데 이제 이런 양질의 프로그램들이 생겨나서 기분 좋다. 홍콩, 일본, 태국 각국의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접하고 함께 대화할 수 있다는 건 너무 행복한 일이다. 물론, 정두홍보다 다른 나라 감독들의 강연이 더 흥미로울 거다(웃음).
-이번 강의의 핵심은 무엇인가. =학생들이 다들 미래의 감독이 될 터이니 핵심을 알려주고 싶었다. 요지는 이거다. 액션감독을 스태프로 채용했으면 그들에게서 확실히 ‘뽑아 먹어라.’ 전문가를 놀리지 말고 적극 활용해라. 연출팀에서 미리미리 숙제를 내주고 어떤 부분이 필요할지 서로 논의 해가면서 만들어야 제대로 된 액션이 나올 수 있다.
-다년 간 현장에서 느낀 체험이 주가 되었을 것이다. =맞다. 예전만해도 감독들이 액션팀에게 요구하는 건 그냥 ‘합을 짜봐라’, 이런 수준에 불과했다. 다행히 최근에는 프리프로덕션 때부터 디지털 콘티를 만들고 많은 연출팀과 액션팀이 무수한 논의를 거쳐 영화 속 무술을 디테일하게 연구하는 작품들이 늘어났다. 류승완, 김지운 감독 작품들이 그런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생산됐다.
-특화된 ‘한국 액션’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액션을 ‘개싸움’ ‘리얼 싸움’같은 명칭으로 불렀다. 그런데 이젠멀티화의 시대다. <매트릭스>를 보면 홍콩액션이 첨가되지 않나. 굳이 우리의 것을 특화시키겠다고 해서 시나리오에도 안 맞는 태권도를 억지로 짜 맞추는 것보다 작품에 맞는 액션을 개발해야 한다.
-홍콩이나 일본 같은 경우, 각자의 트레이드마크가 형성되어 있다. =영화 때문에 각 나라의 액션이 지금처럼 구분되었을 뿐이다. 홍콩의 성룡영화를 비롯, 골든 하베스트의 액션에는 왕호나 당룡, 황정리 같은 우리나라 무술인들이 가르친 발차기가 섞여있다. 일본 사무라이 액션도 마찬가지다. 한국영화에서 액션이 ‘양념’에 불과한 것과 달리, 홍콩 영화는 액션이 주가 되다보니 그걸 더 특화시켜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무술감독으로서 뿐만 아니라, 이번에 장르영화 제작지원을 하는 ‘잇 프로젝트’에 연출자로 <상해>라는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느와르풍의 작품인데, 아직 시나리오만 나온 상태고 좀 많이 고쳐야 한다. 지금은 다들 용기를 주지만, 막상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지 않으면 비판이 심할 거다. 정두홍이라는 상표를 흠집 안내고 실수 없이 해내고 싶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는다. 이 바닥에서 ‘피 흘리면서 예술한다’는 마음으로 버텨왔으니 정말 예술 한번 하고 싶다.
-그간 무술감독 뿐만 아니라 연출자로서의 포부를 꾸준히 밝혀왔다. =류승완 감독이 ‘이제 당신은 액션에만 전념하라’고 권유하더라(웃음). 사실 갈수록 액션이 전문화되는 추세다. 그런데 연출은 언제든 하고 싶은 꿈이다. 밭 갈 듯이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무에서 유를 일궈왔다. 액션감독으로서 앞으로 더 할일이 많아졌다. =“<무사>나 <달콤한 인생> 이후 정두홍도 하향 길이다.”라고들 많이 한다. 맞다. 그렇다고 어떻게든 새로운 걸해서 깜짝 놀래주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 한두 해 나이를 먹다보니 정서가 뭔지 알겠더라. 캐릭터의 이해를 통한 액션, 억지스럽지 않은 영화 속 액션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