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만주 벌판에서 놀던 옆집 형이 뻥치는 거라 생각하고 들으세요.(웃음)" 가볍게 시작했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은 강의였다. 부천영화제가 야심차게 준비한 환상영화학교 2008의 첫 테이프는 소문난 액션영화 매니아 오승욱 감독이 끊었다. 7월19일 오전 10시, <60,70년대 한국액션영화 강의>라는 주제로 복사골문화센터 6층에서 진행된 오 감독의 강의는 액션영화의 변천사를 한국의 역사적 상황과 함께 엮어내 흥미를 끌었다. 오 감독은 "두 시간 안에 모든 얘기를 다 할 수는 없다"며 아쉬움을 보이면서도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려는 듯 빠른 어조로 수업을 이끌어나갔다.
1950년대- 폭력이 일상다반사였던 시기 1950년대는 폭력이 일상다반사였던 시기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죽이거나,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그런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과연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를 볼 수 있었을까. 혹은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없었다고 본다. 전후에 쓰여진 한국 소설을 보면 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가, 왜 사람을 죽여야 하는가, 이런 주제의 작품이 등장하지 않나. 영화도 마찬가지다. 1950년대는 직접적인 전쟁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소설이 그랬듯 실존에 대한 고민만 했던 시기였다. 1958년, 신상옥 감독의 <지옥화>란 영화가 있었다. 굳이 50년대 액션영화를 찾자면 이 작품을 들 수 있을 텐데, 이마저 액션에 무게를 둔 영화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고민이 더 큰 영화였다. 액션 장면이라고 해봤자 총이 등장하고, 사람만 한두명 죽었을 뿐이었다.
1960년대- 일본군, 스파게티 웨스턴, 그리고 주먹들 액션 영화의 범주에 들어갈 만한 전쟁 영화들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만 누군가를 죽이는 데서 오는 죄의식을 덜 공격 대상이 필요했고, 그 첫번째 목표가 일본인이었다. 탄압받던 독립군들이 만주벌판에서 일본군에 맞선다는 소재는 1960년대 초 정창화 감독이 만든 액션영화의 중요한 내용이다. 하지만 거의 다이너마이트로 싸웠기 때문에 서구영화처럼 총을 빵빵 쏘는 쾌감이 없었지. 참 재미있는 예가 있는데 박정희 대통령 때, 불법무기를 수거한 적이 있다. 경찰서에 갖다 놓으면 죄를 안 묻겠다고 했더니 당시 경찰서 앞에 총이랑 수류탄이 지천으로 널렸다더라. 사람들이 무기를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론 집집마다 숨기고 있는 이중적인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1960년대 중반 스파게티 웨스턴이 극장에 걸렸을 때, 우리는 이런 영화, 즉 죄의식은 장난이 되어버리는 영화를 왜 못 만드냐는 얘기들이 나왔던 거다. 만주를 배경으로 신성일, 최무룡을 주연으로 한 007 스타일의 첩보물이 등장했던 것도 이 때다. 하지만 만주는 이미 먼 시대 얘기였고, 대중은 더 센 이야기를 원했다. 그래서 독립군의 편에 서는 동시에 주먹으로 군림했던 김두한이란 인물이 전면에 등장했다. 조선 팔도의 주먹들이 모두 등장하는 <팔도사나이>는 대중에게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고, 속편이 계속해서 제작될 정도였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 영화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인물이 종로의 주먹대장 장동휘가 아니라 익살맞고 독특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박노식이었다는 점이다. 관객들이 그를 더 좋아했던 까닭은 사투리를 쓰는 평범한 남자가 액션영화에 출연하는 데서 친숙함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1970년대- 검열 vs 깡패영화, 이소룡 vs 이두용 이건 유언비어인데, 박정희 대통령이 <미드나잇 카우보이>를 보고 격노했단다. 박 대통령이 "남자와 남자가 사랑을 하다니, 이런 천인공노할 얘기가 있나!"라고 외친 후 검열이 심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70년대 들어 사전 검열이 심해진 건 사실이다. 아이러니한 건 검열이 심해질수록 깡패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가 어마어마하게 나왔다는 거다. 임권택 감독은 ’진짜 깡패영화’를 만드는 대표적 감독이었다. 다만 검열을 피하기 위해 개과천선한 깡패와 앙심을 품은 조직의 대결을 주제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이 당시엔 이소룡과 홍콩영화가 극장가를 주름잡던 시기였다. 그런데 발차기가 주특기인 이소룡이 ’태권도의 동작을 참고했다’는 말이 나오자 한국사람들은 우리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때 홍콩영화 이상의 액션 장면을 만들어낸 사람이 이두용 감독이다. 이 감독은 늘씬하고 긴 다리의 주인공이 적의 얼굴에 연타를 날리는 태권도 액션 신을 훌륭하게 만들어냈다. <용호대련> 같은 영화는 동남아로 수출됐는데, 홍콩 애들도 이 감독 영화보고 기절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