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 전에, 먼저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한국 영화에서 액션이란 무엇일까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수 초 안에 대답하기 힘든, 어려운 질문이긴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액션영화를 꿈꾸는 감독들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없을 것이다. 20년간 현장에서 온 몸으로 답을 체득한 정두홍 무술감독은 "액션은 내용물이고 감독은 그릇이다. 당신의 아이디어에 따라 액션도 달라진다."는 말을 남겼다. 7월19일 오후1시 경기아트홀 2층에서 환상영화학교 2008의 일환으로 진행된 정두홍 무술감독과 서울액션스쿨의 공연은 현장의 열기를 무대에서 재현해보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예비감독 장요한과 연출에 도전해보고 싶었다는 배우 홍연근은 정두홍 감독과 함께 각각 하나의 액션시퀀스를 연출해냈다. 내일의 공연을 맡은 <옹박4:초콜렛>의 무술팀도 객석에 앉아 이들의 공연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다음은 베테랑 무술감독이 공연으로 말하는 '액션영화에 반드시 필요한 네 가지'다.
하나. 구체적인 이야기를 설정하라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드실 겁니까?" 정 감독이 질문하자 장요한 감독은 지체없이 "여자분에게 집적대는 치한이 혹독하게 당하는 이야기"라 대답했다. 하지만 ’어떤 무술’을 사용해서, ’어떤 동선’을 짤 거냐는 질문에는 쉽게 답을 내리지 못했다. 액션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영화에 대한 밑그림이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잡혀 있어야 한다. 모든 질문은 감독에게 집중되기 때문에 현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가장 공부를 많이 하고, 가장 액션을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둘. 리얼리티가 살아야 한다 "잠시만요, 왜 그렇게 가는 거예요?" 치한을 맡은 액션배우들에게 장요한 감독이 특정한 동작을 주문하자, 정두홍 감독이 묻는다. 모든 동작에는 이유가 있다. 물론 더 멋진 액션을 위해 화려한 동작을 선보일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배우들은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는 것. "올드보이의 장도리 액션은, 솔직히 리얼리티라고 할 수는 없죠. 한 사람이 여러명을 그렇게 제압할 수 있나요. 하지만 이것이 요즘 액션의 경향이기도 합니다." 액션이 사실적이지 않은 대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액션의 허구성을 보완하는 영화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정 감독은 말했다. <본 아이덴티티> <테이큰> 등이 그 예다. 그런데 이들을 진정한 액션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셋. 큰 동작이 화려해보인다 액션배우들이 장요한 감독이 주문한 '치한 퇴치' 장면을 멋지게 소화해내자, 박수가 쏟아졌다. 하지만 정 감독은 "주인공의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액션의 합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액션을 돋보이게 만드는 기술이다. "똑같은 동작도 좀 더 크게 하면, 액션을 돋보이게 할 수 있다"고 정두홍 감독은 말한다. 빠르게 표현해야 할 부분에는 리듬을 주고, 천천히 가야 할 부분은 좀 더 느리게 가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넷. 조언을 구하라 아무리 액션영화에 정통한 감독이라도 다음 장면을 어떤 동작으로 채워야할지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무술감독과 상의하면 된다. 하루 365일 무술만 생각하는 사람이니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을 수밖에. 장 감독이 조언을 구하자 정두홍 감독은 즉석에서 엄지로 급소를 찌르는 장면과 목과 팔을 이용한 꺾기 장면을 소화해내 박수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