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을 하루 앞둔 7월17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사무국이 위치한 복사골문화센터는 분주하다. 영화제 홍보물과 필름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고, 스탭들은 1층부터 5층까지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한다. 평상시에 주민들의 스포츠센터, 여가 시설로 쓰이던 건물은 어느새 등에 날개를 단 피판 레이디 유진의 현수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영화제 파행, 영화인들의 영화제 보이콧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과거는 어느새 활기와 흥분 뒤로 사라진 듯했다. 설렘을 숨기지 못한 한상준 집행위원장의 얼굴 표정까지. 2007년 정상화 이후 부천의 두 번째 깃발이 복사골 한가운데 꽂혔다.
-올해 예산은 어느 정도인가. 지난해보다 많이 늘었나. =그렇다. 일단 NAFF(Network of Asian Fantastic Films·아시아 판타스틱영화 제작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사업이 있기에 커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제 자체는 지난해랑 비슷한데 나프 관련 프로젝트들이 있어서 전체적으로 32억원 조금 넘는다.
-나프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11회 영화제를 마치고 영화제에 장기적인 비전이 없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그게 없으면 영화제 스탭들을 내가 끌고가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프로그래머들과 외국의 다른 영화제들을 참조해서 부천이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발전할 수 있을지 많이 얘기했다. 그러다 최근 영화제가 많이 늘어나는 만큼 어떻게든 차별화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러러면 부천이 가진 판타스틱이란 설정이 소중하구나 싶더라. 지금이야 편하게 얘기할 수 있지만 사실 부천에 와서 한때는 이름에서 판타스틱을 뺄까도 고려했었다.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도 재정 문제 때문에 중단됐었고, 도쿄판타스틱영화제도 중단된 상태고. 판타스틱영화제의 일반적인 한계가 있는 건가 싶더라. 판타스틱이란 설정을 버리고 일반 영화제로 규모를 더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11회를 마치고 생각이 달라졌다. 판타스틱이란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충분히 구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겠더라.
-어떤 면에서 그런가. =세계 대형 영화제들의 공통점이 모두 영화제 이외의 시네마테크, 프로젝트 마켓 등을 가진 거다. 어떻게든 산업적인 것과 연관이 있다. 그리고 부천영화제를 생각했을 때 우리가 1년 동안 얻은 생생한 정보는 그냥 버리기에 아까운 면이 있다. 한국의 영화산업 내에서 장기적으로 할 일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영화 한편을 가져올 때도 이제는 예년과 달리 많이 힘들어졌다. 제작사들은 궁극적으로 그 영화가 한국에 배급되길 바란다. 우리가 배급 통로를 확보해줄 수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영화 수급 문제가 판이하게 달라진다. 작년, 재작년에 했던 인더스트리 스크리닝, 환상교실, 웨타 워크숍 등의 프로그램을 좀 키워서, 프로젝트 마켓까지 꾸려서 간다면 괜찮은 모델이 나오겠다 싶더라. 또 최근 부천에는 멀티플렉스의 공급 과잉으로 휴관하는 극장들이 많다. 그걸 대관해서 시네마테크를 꾸릴 수도 있겠더라. 틈새시장을 노려서 배급전략을 꾸려볼 수도 있고.
-나프 안에는 제작 지원프로그램인 IT 프로젝트가 있다. 또 나프 프로그램 중 하나인 환상교실은 올해 액션이란 장르를 선택했다. 결국 나프는 부천이 영화 제작과 장르에 힘을 주고 가겠다는 의지처럼 보인다. =장르에 대한 건 일단 부천영화제의 포지셔닝 문제다. 그런데 세계 다른 판타스틱영화제를 보면 공식적으론 판타스틱영화제라 하지만 자기들끼리 장르 베이스드 필름(genre based film), 장르 오리엔티드(genre oriented) 등의 표현을 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장르는 주로 호러나 SF, 스릴러 이 3대 장르가 위주다. 하지만 요즘은 사회·문화적인 환경이 많이 변해서인지 판타스틱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다. 장르가 뒤섞이고, 장르 안에 다른 장르가 있고. 테크놀로지 발전도 한몫했을 거다. 멜로드라마에도 판타스틱한 게 있고, 코미디에도 판타지 요소가 있고. 그래서 이젠 판타스틱을 내세우긴 하지만 장르영화를 조금 더 돋보이게 하는 게 맞겠다 싶더라. 그게 나프 프로젝트와 자연스레 연결됐기도 하고. 물론 IT 프로젝트 지원작 중에는 3대 장르가 아닌 작품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판타스틱한 부분은 견지하고 가려고 한다.
-나프 프로젝트가 있으면 매년 영화제 규모가 조금씩 커지겠다. =영화제 자체의 규모는 더 키울 생각이 없다. 상영작 200여 편 정도의 규모를 유지하려고 한다. 다만 나프사업이나, 시네마테크, 출판사업 등 부천영화제의 일부이긴 하지만 다른 영역이기도 한 사업들을 활성화하려고 한다. 안정적인 영화제를 위해서 구조적으로 대형화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2007년 영화제 정상화 이후 두 번째 축제다. 기분이 어떤가. =요즘도 인터뷰하면 부천시와 관계가 어떤지 많이 물어본다. 그런데 이젠 아주 좋아졌다. 일단 신뢰가 회복됐다. 홍건표 부천시장도 이번 자원활동가 발대식에 오셔서 영화제 사무국을 완전히 신뢰한다, 믿어서 전화도 안 한다고 하셨다. 실제로 별일 없으면 전화 안 하신다. 자율성 문제 때문에 그간 갈등이 많았는데 이제 그건 해결됐다고 본다. 다만 개막식장에 좌석 문제처럼 작은 부분의 갈등은 아직 있지만 그건 어느 영화제나 모두 가진 정도의 갈등이다.
-올해는 높은 예매율을 비롯해 관객 반응이 좋은 것 같다. =(웃음) 예매율이 엄청나게 좋다. 매진작이 속출하고 있고, 개막 가까워지니까 인터넷 예매가 확 올라간다. 나는 활자세대라 잘 몰랐는데 요 며칠 인터넷 블로그를 보니 관객이 영화제에 갖는 생각이 많이 좋아졌더라. 파행사태 보고 안 갔는데 다시 가겠다, 덥고, 짜증 나지만 영화가 좋아서 보러 가겠다는 얘기가 많더라. 무엇보다 희망적인 건 부천이 영화 자체에 대한 관객의 신뢰를 다시 얻은 것이다. 다행이고 소중하다.
-오늘은 비가 안 오지만 곧 태풍이 온다고 하더라. 여전히 날씨가 걱정되겠다. =부천이 비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젠 인식을 전환했다. 왜 부천은 매년 비 걱정을 해야 하나 싶더라. 비가 오든 안 오든 성공적으로 영화제를 마칠 수 있게 하면 되지 않을까. 나프가 있어서 그런지 올해는 좀 걱정이 덜하다. 다만 마른장마라 폭염이 걱정된다. 농담 삼아 부천은 비도 폭우, 더위도 폭염, 뭐든지 화끈해서 좋다고 말한다. (웃음) 태풍이 온다면, 뭐 한번 겪어보겠다. 자연조건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해서 극복할 수 있는 영화제가 돼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