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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에서 에이젠슈테인의 영향은 여전하다”

<알마티에서의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1941-1944> 관객과의 대화

중앙아시아 특별전 중 한 작품으로 전주를 찾은 영화 <알마티에서의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1941-1944>의 GV가 5월6일 오후 5시 상영 뒤 메가박스 6관에서 열렸다. 저널리즘을 전공한 카자흐스탄의 이고르 고노폴스키가 연출한 이 작품은 독창적인 영화이론가이자 소비에트식 몽타주 감독들 중에서도 가장 혁신적인 실천자로 명망이 높은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마지막 생애 몇년간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 묻는 평론가 홍성남씨의 질문에 이고르 고노폴스키는 “그는 유명한 이론가였고 영화감독이었으며 배울 점이 많은 위대한 인간이다.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감독들이 만들고 있는 많은 영화도 여전히 에이젠슈테인의 영화에 기초하고 있다”며 제작동기를 밝혔다. 나이 지긋한 그러나 열정적인 한 관객은 “<이반 대제>를 만들면서 에이젠슈테인이 국가와 어떤 갈등을 겪었는지 궁금하다. 에이젠슈테인이 <전함 포템킨>을 만들던 시절과 오늘 본 영화에서 많이 등장한 <이반대제>를 만들던 시절의 상황은 많이 다르지 않았던가”라며 격정적으로 질문했다. 1941~1945년 즉 에이젠슈테인 사망 몇년 전 그가 <이반대제>를 만들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로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초기 영화와 후기 영화제작 상황을 비교해서 알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 감독 이고르 고노폴스키는 당시 스탈린과 에이젠슈테인과 관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에이젠슈테인이 1부를 만들었을 때 스탈린은 이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다. 직접 훈장을 수여했을 정도다. 하지만 완성된 2부를 보고 나서 스탈린은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걸 알았던 에이젠슈테인은 나머지 영화인생은 고사하고 <이반대제> 1부와 2부가 모두 소실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했다. 실제로 그 뒤 그는 영화를 제대로 만들 수도 없었고 강의를 하거나 책을 쓸 수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의 증언자들은 에이젠슈테인이 “주인공 이반의 스케치를 보여주었을 때 즉각적으로 그게 스탈린을 암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고 말하는데, 스승 메이어홀드에 이어 자신조차 종국에는 스탈린주의의 희생양으로 삶을 마감했던 에이젠슈테인의 치열했던 마지막 생애를 이 영화는 흥미롭게 기록하고 있다. 한편, 행사 중 예기치 못한 사고가 있었는데, 이고르 고노폴스키의 러시아어 통역자가 미숙함을 보여 GV를 관람하던 카자흐스탄의 굴나라 아비케예바 유라시아영화제 아트디렉터가 급하게 뛰어나가 통역을 대신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GV는 예정보다 훨씬 빨리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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