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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화학적 열병, <내 마음에 불꽃이 있어>
2008-05-04

<내 마음에 불꽃이 있어>

잠들지 못하는 청춘들은 원인모를 속병으로 기나긴 밤을 지새운다. 술로 마음의 병을 소독해 보려고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숙취만 남지 고민거리는 그대로다. 그럴 때는 시간이 약이라고 참고 인내하는 수밖에. <내 마음에 불꽃이 있어>는 오늘을 살고 있는 20대가 겪고 있을 몸과 마음의 고통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영화는 이들의 열병이 성장통임을 보여준다.

정인은 여자 친구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자 사는 게 공허하게 느껴진다. 정인과 함께 영화촬영을 하는 형은 감독임에도 촬영장에 나타나지도 않는다. 참, 되는 일이 없다. 정인은 영화감독으로서의 열정이 부족한 선배가 한심해 보인다. 정인은 부산으로 가는 기차에서 우연히 고향후배를 만나지만 후배와의 관계는 더디게 진행된다. 후배는 정인에게 여승무원인 자신이 겪는 비정규직으로서의 불안감을 토로하는데 이는 KTX 여승무원 부당해고 사건을 환기시킨다. 한편 유학 간 여자 친구는 정인에게 이메일을 통해 유학생활이 너무 힘들다는 소리를 한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20대의 고통이며, 그 고통을 나누지 못하는 그들 간의 단절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수족관을 사이에 둔 것처럼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다. 그들은 자신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진 듯 괴로워한다. 하지만 고통의 모양새는 달라도 체감하는 무게는 같기 마련이다.

영화는 대화보다 글을 통해 진심을 고백한다. 대화만큼이나 문자 메시지, 이메일, 편지, 일기장이 자주 등장한다. 때로는 속삭이듯 문자로 사랑을 고백하지만, 때로는 칼날에 베일 것처럼 날선 이별선언을 하기도 한다. 좋아한다고 말하려니 볼이 발그레해져 금방 들킬 것 같고, 상처 줄 말이나 행동을 하자니 눈을 마주 볼 용기가 없다. 그들은 아직 여리기만 하다. 영화는 그들의 속내가 풀어질 즈음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자주 보여준다. 풀 샷으로 담은 부산의 여름 풍경은 수채화 같이 투명하다. 더불어 순정만화 같은 감수성이 이 영화 후반부를 장식한다. 오토바이로 드라이브를 즐기거나, 보트로 저수지를 건너고, 한 여름 밤 모기향을 피우고 맥주와 정종을 나눠 마시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다만, 낭만이 지나치면 현실을 가리기 마련이다. 청춘들의 고민을 치유해줄 목적이었다면, 후반부의 지나친 서정성은 영화의 독이 될지도 모른다. 20대에도 낭만은 유효하지만, 마음속의 꺼져가는 불씨는 지필 수 있을 때에만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독이 될 낭만을 가진 자는 영원한 몽상가로 남을지도 모른다. 낭만은 이 영화의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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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도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