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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하라! 베트남의 진실

전쟁, 전후, 그리고 현재,‘특별전: 베트남영화’

베트남 전쟁이 세계 영화사에 미친 영향에 비한다면 베트남의 영화사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에 가깝다. 베트남 전쟁은 60년대 후반 제3세계의 혁명 영화들이나 서구의 자기 반성적이고 혁신적인 현실참여 영화들의 도화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익숙한 장면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정글 속에서 개미떼처럼 몰려다니는 베트남 군인들의 모습, 혹은 무덥고 습한 지옥 같은 국가의 형상이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할리우드 덕택인데, 베트남 전쟁이 할리우드의 제국주의적인 시선을 완성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할리우드는 꾸준히 <람보>의 아류작들을 반복생산하며 반공적인 영웅서사를 완결하는데 여념이 없었고, 전쟁의 참혹함을 전달할 때조차 참전 군인들의 시선 안에만 머물러왔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전주 영화제에서 열리는 베트남 영화 특별전은 전쟁을 겪어야했던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196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는 극영화 다섯 편과 2000년대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두 편까지 총 7편의 작품들은 모두 베트남 전쟁의 자장 안에서 전시(戰時), 통일(1975) 이후, 도이모이(1986년 베트남의 개방정책) 후의 현실을 반영한다. 각 작품들의 제작연도는 40년에 걸쳐 있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들은 베트남 전쟁의 상흔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대부분이 멜로드라마적인 틀 안에서 전쟁으로 인해 부서져가는 가족의 비극을 재현하고 있으며 초점은 언제나 전쟁을, 혹은 그 기억을 헤쳐나아가야 하는 민중들의 삶에 맞춰져 있다.

<와일드 필드>

베트남 영화의 걸작인 <와일드 필드>를 비롯한 7편 상영

<미세스 투하우>(1963, 팜 키남)는 1950년대 초를 배경으로 전쟁에 의해 자신의 삶이 처참하게 파괴된 여성이 결국 적군을 향해 총을 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는 과정을 따라간다. 악마처럼 웃으며 민간인 마을에 폭격을 가하는 프랑스 군인의 모습이 새롭다. <하노이에서 온 소녀>(1974, 응우옌 하이닌) 역시 평화로운 마을에 불어 닥친 전쟁의 참혹함을 재현하는데, 영화의 주인공은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후 파편화된 마을을 헤매는 소녀다. 영화는 소녀의 비극적인 현재에 전쟁 이전 단란한 가족과 함께 했던 소녀의 일상을 플래쉬 백으로 삽입한다. 순수했던 아이의 얼굴과 어둡고 지쳐버린 소녀의 얼굴이 끊임없이 대비되며 무고한 민중들의 삶을 무너뜨린 전쟁의 상처를 전달한다. <10월이 오면>(1984, 당 낫민)은 남편의 전사소식을 듣고도 시아버지, 아들과 삶을 이어가야하는 어느 여인의 사연을 담으며 전쟁을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앞의 영화들과 달리 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전쟁과 죽음, 그리고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래 위의 삶>(1999, 응우옌 탄반)은 남북으로 분단되었던 베트남이 통일되면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분단 가족사의 비극을 다루고 있는데, 두 명의 아내와 한 명의 남편을 중심으로 애증과 갈등의 드라마가 베트남의 고요한 풍경 아래 펼쳐진다. 한편 이번 특별전에서 소개되는 두 편의 다큐멘터리는 베트남의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감독 라이반신의 작품들이다. <미세스 남>(2000)은 전쟁 중 간호사로 활동했던 어느 여성이 자신이 태어난 땅에 묻혀야 안식을 얻는다는 베트남의 전통적인 믿음에 따라, 전쟁 기간동안 죽은 병사들의 시신을 발굴해서 고향으로 보내는 일을 하는 과정을 담는다. <정의의 길>(2004)은 전쟁이후 지금까지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는 베트남 민중들의 현실과 이들의 목소리를 따라간다.

무엇보다도 일곱 편의 영화들 중 가장 흥미로운 영화는 베트남 영화의 걸작으로 알려진 <와일드 필드>(1979, 응우옌 홍센)다. 영화는 습지에 숨어 살면서 혁명세력의 교신자로 활동하는 게릴라 전사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가족의 평화로우면서도 무척 위태로운 일상과 투쟁이 사실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감싸진다. 특히 시시각각 습지에 출몰하는 미군 헬리콥터와 그 때마다 갈대를 헤치며 물속을 거의 기어 다니는 가족의 대치전이 자아내는 긴장감은 실로 압도적이며, 절묘한 편집과 어둠을 뚫고 나아가는 듯한 인물들의 삶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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