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작가는 갔지만 유산은 지속된다. 지난 6월28일 대장암으로 별세한 대만감독 에드워드 양의 부인 카일리 펑이 부산을 방문했다. 큰 키에 짧은 커트 머리를 경쾌하게 날리는 카일리 펑은 위대한 작가의 숨은 미망인이라기 보다는 창조적 동반자에 가까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고, 실재 모습 또한 그렇다. 남편의 유산을 기억하려는 PIFF의 의지에 적극적으로 답례를 보내듯 에드워드 양과 관련된 행사들에 정력적으로 참석하는 것이 그 증거다. 카일리 펑이 현재 가장 커다란 힘을 기울이고 있는 작업은 에드워드 양이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떠난 무협 애니메이션 <바람>(The Wind)의 마무리다. 영화는 프랑스와 중국 자본의 합작으로 완성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언제라고 기약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견고한 의지대로 완성이 될 거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에드워드 양의 이름 옆에 카일리 펑이라는 또다른 예술가의 이름을 붙여놓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부산에서 회고전을 연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감흥이 들었나. =6월말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후에는 기분이 상당히 가라앉아있던 상태였다. 모든 사람의 생명에는 여정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남편의 작품들이 완벽하게 정리가 되고 더 널리 알려지는 게 아닌가 싶다. <하나 그리고 둘> 역시 PIFF에서 시작해서 널리 알려진 작품이기 때문에 남편은 PIFF를 매우 높이 평가했었다. 그리고 내가 가슴으로 이해하는 남편은 언제나 아시아의 감독이다. 이렇게 회고전으로 정리가 된다는 것이 기쁘다.
-처음 에드워드 양 감독을 만난건 언제였나. =알다시피 우리는 열여덟살 차인데,(웃음) 지난 1991년에 나는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대만으로 건너와 모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고, 피아니스트로서도 활동하며 첫번째 앨범을 막 대만에서 발매한 때였다. 그때 친구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감독님을 만나게 된 거다. 고전음악을 좋아한 남편은 첫 만남에서 계속해서 바하 이야기를 했고, 나는 좋아하는 감독인 우디 앨런 이야기를 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에드워드 양 감독님이 바하를 좋아했다니 의외다. =남편은 원래 엔지니어 출신이기 때문에 구조성이 견고한 음악을 좋아했고, 건축이나 수학의 관계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를 하곤 했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보건데, 남편의 영화들을 보면 구조 자체가 완벽하게 이루어져있고 인간의 여러가지 모습들을 아주 세밀하게 점성적으로 그려내는 것 같다.
-<하나 그리고 둘>에서 프로덕션 디자인과 음악을 맡은 것으로 알고있다. =그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의복도 모두 내가 만들었다. 그외에도 서로 예술적인 협조상태를 유지하며 많은 창작물들을 만들었었다. 대부분 TV 광고였기 때문에 이곳에서 보기는 힘들겠지만.
-그런식으로 오랫동안 예술적 협력관계를 이루다보면 이견이 생기는 일도 있었을텐데. =의견이 워낙에 잘 일치하는 편이어서 그럴일은 별로 없었다. 특히 미술이나 서술의 기교에 있어서는 의견이 완전히 일치했던 것 같다.
-에드워드 양의 작품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은 뭔가. =역시 <공포분자>와 <하나 그리고 둘>. 개인적으로 어떤 기억이 있냐고? 아니. 개인적으로라기 보다는 객관적인 예술성으로 판단할 때 좋아하는 작품들이다.(웃음)
-우리가 아는 에드워드 양은 사려깊은 한명의 작가다. 하지만 당신이라면 우리가 볼 수 없는 장소에서 그가 창작과 씨름하는 모습을 훔쳐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세상의 모든 예술가가 그러하듯이 그 역시 자기 자신만의 공간을 필요로 했다. 그는 보통 작품을 쓸때면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들었다. 자신을 깊이 빠뜨릴 수 있는 특정 장르의 음악을 바꾸어가며 들었다. 그런데 나 역시도 음악을 써야했기 때문에 우리집 거실은 매우 간소했는데, 한쪽에서는 그가 음악을 들으며 작품을 구상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내가 피아노를 치며 작곡을 하고 있었다. 하도 시끄러워서 둘이 대화를 나눌때면 소리를 크게 질러댔던 기억이 난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