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고전기의 거장 존 포드의 열렬한 찬미자 가운데 하나인 피터 보그다노비치가 1971년에 발표한 작품 <감독 존 포드>에는 우스꽝스러운 촌극에 가까운 인터뷰 한 토막이 담겨 있다. “당신이 서부를 바라보는 시선은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어두워지고 음울해졌는데 (…) 이러한 변화를 알고 계셨습니까?” “전혀.” “<아파치 요새>가 군대의 전통을 개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보는 관점을 취하고 있는 영화라는 데 동의하십니까?” “컷!”
자신의 영화가 예술작품으로 숭배되는 것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던 포드는 “그것(영화)은 언제나 일이었을 뿐”이라는 식으로 말하며 ‘비평적’ 접근에 종종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곤 했는데, 포드의 이러한 태도가 진심에서 나온 것인지 혹은 영리한 위장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실제 작품 군(群)을 가로지르는 사려와 지성이 범용한 정신으로부터는 나오기 힘든 너비와 깊이를 지니고 있다는 점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확신을 공유한 이에 의해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인 <감독 존 포드>는 한 거장이 일구어낸 영화적 세계의 (전모까지는 아니더라도) 두드러진 특징들을 개괄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인 입문서다. 특히 존 웨인, 헨리 폰다, 제임스 스튜어트, 모린 오하라 등 포드의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들려주는 각종 뒷이야기는 완벽함에 도달하기 위해 고집, 속임수, 그리고 심지어 냉혹함까지도 불사했던 포드 특유의 작업방식을 짐작케 하는 유용한 단서들을 제공해 준다. 지난해에 보그다노비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마틴 스코시즈, 스티븐 스필버그, 월터 힐 등 또 다른 포드 찬미자들의 인터뷰를 덧붙여 일종의 ‘개정증보판’을 내놓은 바 있는데, 스필버그가 15세 때 뜻하지 않게 포드를 만나 1분간의 ‘영화교습’ - “지평선을 프레임의 중앙에 두는 것보다 위나 아래에 두는 게 훨씬 낫다는 걸 알게 되면 언젠가 좋은 영화감독이 될 수 있을 게다. 이제 나가 봐!” - 을 받았던 기억을 술회하는 장면처럼 흥미로운 부분도 적지 않다. 한편,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 작품과 함께 상영되는 포드의 데뷔작 <스트레이트 슈팅>(1917)에선 무성영화시기에 그와 무려 26편의 작품을 함께 했던 배우 해리 캐리의 멋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패배 속의 승리’, 혹은 적대적이거나 불리한 환경 속에 놓인 개인들의 의지를 포드적 주제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면, 또 그러한 개인들이 취하는 위엄(dignity)의 제스처와 풍경 사이의 대비를 전형적인 포드적 미장센으로 간주한다면, 우리는 동시대의 가장 포드적인 영화감독으로 포르투갈의 페드로 코스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세 번째 장편 <뼈>(1997) 이후)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리스본 빈민가 폰타이냐스와 그곳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담아내는 일에 천착해왔던 코스타는 열악한 환경 속에 놓인 이들에게서 열패감보다 위엄을 발견하고 그것을 존중할 줄 아는 예외적인 시네아스트이다. 그리고 작년에 칸영화제에서 공개되어 그의 지지자들을 흥분에 사로잡히게 만든 <행진하는 청춘>(2006)과 이 작품의 ‘번외(番外)편’이라 할 만한 <토끼 사냥꾼들>(2007) - 올해 디지털삼인삼색 프로젝트 중 하나로 만들어진 - 은 그의 영화세계의 특징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걸작들이다. 이때 코스타의 영화작업을 좀 더 내밀한 부분까지 들여다보길 원하는 이들이라면 오렐리앙 제르보의 다큐멘터리 <다시 만개한 꽃 : 페드로 코스타>(2006)를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코스타가 어떤 자세로 촬영에 임하며 영화에 쓸 장면들을 어떻게 골라내는지, 그가 폰타이냐스라는 장소와 그곳의 사람들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갖고 있는지 등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 특히 그가 <반다의 방>(2000)을 만들 당시를 떠올리며 다음과 같이 말할 때, 우린 영화작업에 대한 소박하고 일상화된 정의 속에서 포드적 울림을 발견하곤 감동하게 된다. “영화 만들기란 극도로 단순한 것입니다 (…) 버스, 스쿠터, 혹은 자동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서 (…) 그저 기다렸다 촬영을 했습니다 (…) 그것은 하나의 일, 하나의 직업인 것이지요.”
극도로 단순한 일. <나는 듣고 있다!>(2006)에서 우리는 그처럼 단순한 작업에 지극히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한 커플을 보게 된다. 조심스레 사운드를 체크하고, 배우들에게 단어 하나하나를 발음하는 방식까지 일일이 연출지시를 내리고, 카메라의 위치와 움직임을 신중히 고려하는 등의 일도 일이자만 무엇보다 그들의 작업시간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기다림이다. 이 소박한 촬영현장을 이끄는 커플은 다름 아닌 다니엘 위예와 장 마리 스트라우브이다(페드로 코스타는 <감춰진 미소는 어디에?>(2001)에서 이들의 편집실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을 존경어린 시선으로 담아낸 바 있다). 그들이 촬영 중인 영화는 체사레 파베제 원작의 <그들의 이런 만남들>이라는 작품인데, 지난해 10월 9일 다니엘 위예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안타깝게도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말았다. 영화라고 하는 단순한 작업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우미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영화가 올해 영화제에서 상영되지 못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대신 이것의 무대극 버전인 <그들의 이런 만남들: 인간들… 신들>(2006)을 보는 것으로 약간이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 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