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땅> Hills of Disorder 안드레아 토나치/브라질/2006년/135분/시네마스케이프
문명은 불가역적이다. 지식을 얻는 건 인류의 의지지만, 행여 그 지식이 의도치 않은 파국을 낳는다 해도 무지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다. 브라질에 이주한 이탈리아인 감독 안드레아 토나치는 타의로 문명을 맛본 인디언 카라피루의 이야기를 통해 문명의 치명적인 불가역성을 경고한다. <혼돈의 땅>의 ’문명인’들은 끊임없이 밀림을 파헤치고 인디언을 도시에 포섭한다. 인류학자는 학문의 발전을, 정치인과 사업가들은 국가의 발전을 위해 움직이지만, 그 부작용을 책임지는 건 과연 누구일까.
영화는 카라피루와 인디언 종족이 사는 아마존 밀림의 일상으로 문을 연다. 멧돼지, 원숭이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나체의 인디언들을 자연 다큐멘터리처럼 기록한 서두가 ’문명’의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긴다. 밀림의 평화는 총을 든 도시인들의 원주민 사냥으로 파괴된다. 혼자 살아남은 카라피루는 마을사람들에게 발견되어 문명 생활을 익히고 마을의 귀염둥이가 된다. 곧 그의 사연은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TV 프로그램의 단골소재가 된다. 문명의 매너를 익히는 그에 대한 시선은 <TV동물농장>의 그것에 가깝기도 하다. 인류학자가 통역자로 데려온 한 젊은이가 카라피루의 아들임이 극적으로 밝혀지자, 감동한 브라질 시민들은 그들을 인디언 마을로 돌려보내는 이벤트를 벌인다. 하지만 이미 문명을 맛본 그는 이제 인디언 문화가 더 불편하다는 걸 깨닫는다. 주인공 카라피루와 주변 사람들이 실명으로 출연한 <혼돈의 땅>은 인류학 다큐에 가까운 ’참여관찰법적’인 촬영으로 진실성을 호소한다. 카라피루의 혼란은 브라질 대륙이 불어닥친 개발붐과 나란히 진행된다. 붉게 파헤쳐진 아마존 밀림, 인디언 부족들의 갈등과 순응으로 시선을 확장하면서, <혼돈의 땅>은 지금 브라질이 겪고 있는 격변의 함의를 가만히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