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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첫추억| 민병훈 감독의 1998년 부산
2006-10-16

“영화란 무엇입니까?”

<벌이 날다> <포도나무를 베어라>의 민병훈 감독

영화란 무엇이라고 생각 하세요? ........................ <벌이 날다>의 벌은 무슨 의미인가요? 네?..............벌은 침이 있는데........... 그래서 어쨌다는 것입니까? ........... 주인공은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나요? 으음.............잘, 모르겠습니다.........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 <벌이 날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감독이 그런 질문에도 확실하게 대답을 못하자 그것도 모르고 영화를 만들었냐 하며 정말 두 손 높이 들고 완전히 항복한 모양의 얼굴이더군요. 참 난감하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때 상황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관객과의 대화 후 진땀을 빼고 극장을 나오자 맑고 맑던 하늘에 불현듯 구름이 끼더니 하늘에선 천둥번개와 함께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났나~ 잠시 후 한참을 퍼붓던 소나기가 그치자 도심 하늘은 다시 화사하게 빛을 머금으며 맑은 기운으로 돌아 왔습니다.

전 다음 영화를 더 잘 찍을 수 있겠다, 아니면 넘어 서야겠다 그런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활기와 생명력으로 같이 만들어가는 것이고 더 잘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오만이니까요.

모든 창작물이 그렇듯 영화에도 분명히 우연이라는‘운’이라는 것도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젯밤 악상이 떠올라 내가 곡을 작곡했다고 한다면 그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 안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건 어디선가 던져지는 것입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영화는 그런 운이 훨씬 크게 작용하는데 그 운이 나에게 오려면 내가 더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겸손함을 가지려면 마음을 비워야 하는 건 물론이고요. 하지만 전 그러질 못합니다. 마음이 잘 비워지지 않습니다. 잘해야지 하는 욕심 때문이지요.

영화를 만드는 일은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참혹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자기고백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 거의 모든 것을 고백해 왔고 그 고갈로 인해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영화란 무엇입니까? 관객과의 대화 중 1번 질문입니다. 답은 “아쉽게도 모릅니다” 입니다. “그래도 잘 모르겠습니다”입니다. 그게 정말 솔직한 제 심정입니다.

성큼 성큼 다가선 영화제. 쯧쯧 저렇게 만들어서야. 원... 작가주의, 예술영화라.......(불쌍해!) 관객들 반응에 악몽에 시달립니다. 백년 후에도 우린 부산에서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부산의 어느 한 극장에선 누군가 질문할 것입니다. 영화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