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저를 어여삐 여기셔 역지사지할 기회도 주신다. 아주 드물게 인터뷰당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누군가 인터뷰를 요청하면 대개는 빚을 갚는 심정으로 응하려고 노력한다. 너는 남에게 요구하면서 남의 요청은 외면한다면, 너무나 뻔뻔한 처사가 아닌가. 그리하여 ‘기자님’ 혹은 ‘피디님’께서 촌철살인의 질문을 하시면 청산유수로 답해야 마땅할지나, 대개는 동문서답으로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린다. 그래서 이제는 인터뷰 전에 질문을 미리 물어서 무언가 답변을 준비해두기도 하는데, 막상 이야기를 하다보면 말이 꼬이기 시작하고 한번 꼬인 말은 스스로 돌고 돌아 저만치 샛길로 달아나 있다. 정말로 송구스럽기 그지없다. 더구나 우왕좌왕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 언제나 입맛이 쓴데 나의 취재원들은 어쩌면 그렇게 금과옥조 같은 말들을 술술 하셨을까, 열등감도 밀려든다. 그렇다고 친절한 동욱씨도 절대 되지 못하는데, 짧게 인터뷰만 하는 줄 알고 응했다가 막상 만나서 촬영할 시간까지 부탁받으면 짜증을 참지 못하고 티를 내고야 만다. 남의 시간은 뺏으면서 나의 시간은 아까워 안달하니, 내 간사함에 내가 놀란다.
어쩌다 과분한 영광도 누린다. 나의 기사쓰기는 카오스의 연속인데, 어떤 아이템이 좋은지 취재가 잘되고 있는지 기사가 어떤 반향을 얻을지 아직도 가늠이 어렵다. 예컨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기사가 나름 뜨거운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리라고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솔직히 나에게는 한주를 메워준 고마운 기사였을 뿐인데, 누군가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기사였다며 고마워하고, 또 누군가는 쓰레기 같은 기사라고 욕한다. 뜻밖의 칭찬만큼 뜻밖의 사고도 터진다. 정말로 두려워했던 분들의 항의는 드문데,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사고가 터진다. 언젠가 립싱크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효리 팬들의 항의가 두려웠는데, 정작 물밀 듯한 항의는 비의 팬들에게 받았다. 글의 말미에 괜히 비를 한줄 걸친 것이 문제였다(물론 내 탓이다). 덕분에 기사를 쓰고 나면 이 기사의 뇌관은 어디에 잠복해 있을까, 물끄러미 바라보는 버릇도 생겼다.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우면 고통을 외면하는 재주라도 있어야 한다고 위로한다. 기자질 7년이 됐지만, 요즘도 ‘목요병’에 시달린다. <한겨레21> 기사 마감을 주로 목요일에 하는데, 아직도 심심찮게 이번 주에는 도저히 ‘면 막음’을 하기조차 어렵다는 공포가 엄습한다. 그럴 때면 주문을 건다. 내가 <한겨레21>에서 5년을 일했으니까 1년을 대략 50주라고 치면, 50번 곱하기 5년, 250번의 마감을 했잖아. 더구나 한주에 두어 꼭지를 쓴 적도 있고 <한겨레> <씨네21>에도 썼으니 이번 기사는 대략 500번 중 1번에 불과한 거야, 이렇게 주문을 걸어야 자판을 치는 손에 용기가 붙는다.
하지만 기자로서 마땅히 겪지 말아야 할 창작의 고통은 잠시, 기사를 마감하면 죄송하지만 공상은 계속된다. 절정의 공상을 하나 소개한다. 음… 나는 성소수자, 병역거부자, 장애인 기사를 꽤 썼고 심지어 로마(집시) 이야기까지 쓴 적이 있잖아. 어머나? 모두 나치수용소에 감금당해서 ‘별’을 달았던 사람들이네. 혹시나 나는 전생에 나치수용소에서 죽었던 걸까. 그래서 한풀이를 하는 건가. 아니면 나치 전범이라서 죄 닦음을 하고 있는 건가. 이런 황당한 공상을 하면서도 심지어 나름 진지하다. 정말로 기자라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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