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남단에 위치한 고지(孤地) 파타고니아에서 홀로 살아가는 세 사람의 일상을 담은 <세상 끝에서의 고독>은 카를로스 카사스 감독이 구상하는 고독 3부작 중 2편에 해당한다. 이미 그는 아랄해를 배경으로 다큐멘터리를 찍었고, 조만간 시베리아로 향할 계획이다. 그는 “극한의 환경에서 오히려 고도의 인간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영화를 찍기 위해서는 직접 그곳을 찾아 오랫동안 머무르며 그곳 사람들과 동일한 생활을 경험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피사체와 같은 삶을 영위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고독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한 곳에 오래 머무를 수 없는 역마살 때문이다. “전혀 모르는 장소에서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사람을 접하고 싶다”는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아니었다면, 여행가가 되었을 것이다.
<세상 끝에서의 고독>에는 홀로 글자를 익히는 노인이 등장한다. 영화 속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랜 시간 고립되어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서툴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지만, 그는 그런 어려움이 유난히 심했다. 비슷한 날들이 계속되는 그곳에서 시간의 흐름조차 감지할 수 없는 그는, 2년 만에 촬영을 위해 다시 찾아온 카사스 감독에게 엇그제 본 사람을 대하듯 인사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읽기 실력은 나아진 바 없었다. 사물이 지닌 사전적인 의미 외의 것은 인지하지 못하는 그와는 음식과 날씨에 대한 것이 아니면 대화가 불가능했다.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이 인류학적인 경험이었다고 회고하는 카사스 감독은, 선동보다는 이른바 고찰에 능한 편에 속한다. 브라질 빈민가를 배경으로 하는 전작에서 그가, 마약중개상이나 총격전보다는 99%에 달하는 평범하고 근면한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의 전략은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을 그저 담담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일견 평범하지만, 분명 쉽지 않은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