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쑤! 본좌 본디 서울출신으로 서른 해가 다 되어가는 인생을 통틀어 달포가 넘도록 서울을 떠나본 적이 없으며, 위로 몇 대 할아버지 때부터 한양에 터를 잡고 사셨기에 설이나 추석 귀향길에 대한 추억이 없는 몸이외다. 뽀얀 국물의 이태리 국수에 눈 돌아가고, 양인들의 꼬부랑 노래에 열광하며, 목이 꺽어지도록 높은 건물들에 둘러싸인 풍경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서울토박이의 처자일 뿐이요. 그런 본인이 지난 해 전주를 방문하게 된 것은 전주 영화제 때문이었다오.
평소 하루에 두끼이상 곡기를 입에 대지 않으며 느끼함을 맛의 최고봉으로 꼽았던 사람으로서, 전주에서 자랑하는 맛을 들어보니 그리 탐탁치는 않았소. 허나 사람이 굶고 살 수는 없는 법. 먹어야 비루한 몸 하나 건사하고 영화 볼 기운이 날터이니 밥상에 수저 앞에 놓고 고사를 지낼 순 없는 노릇이었소.
본좌가 식신의 경지에 접어든 건 전주에서 10박11일간 먹었던 서른 다섯의 끼니를 맛보고 나서요. 식욕! 삶을 위한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 전주의 맛을 이해하고 느끼게 한 것이요. 아아, 본좌는 열 끼니를 맛볼 때 즈음 전주의 음식들에 반하고야 말았소. 그리고 스물 두끼에 접어들때는 음식들에 흠뻑 빠졌소. 식신에 접어든것은 서른 세 끼니때 쯤이요. 오오, 국물의 온도가 위험했지만, 두세번 그 안에서 헤엄을 치다보니, 식신의 경지에 들어섰소. 어느 누가 어머니의 밥상이 최고라고 했소. 아니오, 아니오, 전주의 맛은 단연 으뜸이요.
최소비용, 최대만족. 전북대 부근의 맛
학교 앞 음식의 최고 장점은 최소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요. 본 좌 전주 음식 득행기간 중 지나가는 멀끔한 전북대 학생을 붙잡고 전북대 최고의 맛집을 물은 적이 있소. 그가 거침없이 꼽은 곳은 구 정문앞의 /참맛분식/(전화번호를 모르니 학교앞에 가서 물어보오.)이었소. 학생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비빔밥과 볶음밥과 덮밥이었는데, 자잘한 재료들이 고슬고슬한 밥에 박혀있는 모양새가 참으로 다소곳하오. 두명 이상의 동무들과 함께 가서 밥종류를 시키면 순두부찌게도 나온다고 하니, 전북대 학생들의 단골집이 궁금하면 한번 가보시구랴. 그런가 하면 /옛날 땡땡이 상추 튀김/(063-273-0903)이란 곳도 있소. 튀김을 상추에 싸먹는 방식인데 느끼할 수 있는 튀김의 맛을 상추로 상쇄시키는 ’전라’스런 음식이라 하겠소. 상호가 다소 경망스러우나 기름기가 필요한 이들에게 영양보충으로 그만이오.
자, 이제는 /아랫목 김밥/(063-251-3952)에 들러 ’초고추장’ 참치김밥 한줄을 싸와야 할 차례요. 신정문까지 캠퍼스를 가로질러(상당히 멀다오.) 산책하면서 먹기 위함이요. 현대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는 전북대 문화관의 까페테리아에 들려 서양 케이크와 음료 등을 맛보는 것도 괜찮소. 그렇다면 왜 굳이 신정문까지 걸어야 하느냐, 바로 정둔면옥(063-252-7791) 때문이오. 그곳의 닭곰 국시는 일단 먹는 사람의 마음을 내내 기쁘게하오, 국물을 한번 마시고, 소면 말아먹고, 밥도 말아 먹고, 쉽게 식지않은 닭다리 살까지 단계별 행복을 주는 음식은 일단 위대(胃大)한 식신의 마음을 매우 흡족하게 하오. 물론 단계별로 한번씩 기절시키는 그 맛은 지난해 씨네21기자들이 뽑은 최고의 맛이었소.
허허, 이렇게 땅땅해진 배를 두드리면서 전북대 교정 잔디에 누워 시를 하나 지어봤소. 넓기로 조선땅에 둘째가는 교정이라 구정문엔 작은맛집 신정문엔 정둔면옥 옳거니, 자식나면 전북대에 보내렸다
영화제도 식후경, 영화의 거리 근처의 맛
대가 지금 전주를 찾은 연유는 바로 영화 아니겠소. 식신, 이를 인지하고 이곳에서의 맛집도 준비하였소. 아무리 영화 삼매경에 빠졌다 한들 꼬르륵 거리는 뱃속을 외면할수 없소. 그 때는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분식이 최고요. 오며 가며 들리라는 /옴시롱감시롱/(063-231-7367)은 시뻘건 쌀떡볶이와 그 양념에 파묻혀서 떡인 양 누워있는 오뎅, 고구마까지 궁극의 분식 맛을 전하고 있소. 주문할 때는 2명이서 1인분, 4명이서 2인분이 안된다는 문구에 섭섭해도, 다 먹고나면 너그러이 용서되오.
또 있소. 영화제가 열리는 4월말에서 5월초, 예측하기 어려운 날씨에 지금 추천하는 맛으로 체온을 조절하면 어떨까하오. 갑작스레 내리는 봄비로 으슬으슬 춥다면 /효자문 식당/(063-284-4236)의 갈비탕을 권하오. 걸쭉하지 않고 말간 국물은 간장 양념이 그 비결이외다. 안쪽으로 쭉 들어가면 한옥집을 개조한 방도 있으니 주인장어른께 아뢰면 분위기도 함께 즐길 수 있소. 얇은 저고리를 접어 올려봐도 강렬한 햇빛이 부담스럽다면 /원조 함흥냉면/(063-282-9946)의 시원한 냉면발과 육수를 맛보시오. 그 중 회와 고기가 곁들어진 섞이미 냉면과 원조 함흥냉면은 ’원조’를 아무나 붙일 수 없는 것임을 혀로 느낄 것이오.
허허, 국물에 출렁출렁한 배로 박자를 맞춰가며 영화의 거리에 번쩍거리는 루미나리에 불빛아래서 시 한수 지어봤소 보는것은 욕망이로되 먹는것은 본능이오 영화만 구경하면 주린배가 여엿브니 아희야 영화제도 식후경이라 하노라
눈보다는 혀를 믿으오, 한옥마을 근처의 맛
화를 보느라 분주하더라도, 한옥마을은 필시 챙겨서 구경하고 오시라고 말하고 싶소. 전주에 왔다는 도장이나 정표와 같은 곳이오. 물론 이곳에도 미각을 즐겁게 해줄 유명한 맛집들이 있소. 일단 그 이름도 유명한 /베테랑 분식/(063-272-1394)의 칼국수요. 원래 식신의 경지에 들어서면 처음 눈으로 현혹시키는 음식들은 저급한 것으로 여기기도 하오. 그런점에서 베테랑 칼국수는 오인받을만 하오. 색색의 고명과 그릇을 넘칠듯한 국물은 가장 말초적인 방법으로 침이 고이게 한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오. 식신도 가끔은 본능을 억제 하지못해 화려한 외관에 저급하다고 평해도 이미 젓가락은 움직이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베테랑 칼국수가 딱 그 경우였소. 결론만 말하면, 맛은 저급하지 않았소.
한옥마을에서 멀지 않은 남부시장의 /현대옥/(물어서 찾아가보오, 전화가 없소)은 반대의 경우요. 더러운 은회색빛 탁자에 달랑 내놓은 김치반찬은 눈을 가리고 싶게 만드오. 허나 아줌마가 덜렁 던져놓고 간 콩나물 국밥 한술 뜨면 옆가게에서 김 봉지 사다들고 새벽부터 줄 서있는 진풍경이 이해되오. 한옥마을 옆동네에 위치한 /반야돌솥밥/(063-288-3174) 역시 훌륭하오. 식신으로서 특히 높이 사는 것은 비빔밥에 돌솥이란 재료를 도입해 낸 새로운 맛 때문이요. 한옥마을에는 한지전시관이나 공예품전시관 등 볼거리가 많은데, 그 중간에 딱 쉬어가면 좋을 찻집도 있소. /고신/(063-232-8922)은 옛것과 새것을 가리키는 뜻으로 전통과 현대의 적절한 조화가 어우러진 내부구조와 장식이 무릎을 칠 정도로 감탄스러운 곳이오. 눈 감고 고신의 황차 한번 입에 물면 당신은 식신보다 더 높은 신선의 경지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오.
허허, 이번엔 한옥의 아름다운 기와 밑에서 우아하게 배를 쓰다듬으면서 시를 읊어볼까 하오. 눈 홀린듯 어떠하리 눈 버린듯 어떠하리 전주의 참맛은 그 혀만이 알터인데 젓가락 먼저 움직여도 나무라지 말아라
군침돌면 친구꿰어 가보세, 놓치면 안될 그밖의 맛
백번가도 또가고픈 한정식의 백번집(063-286-0100) 손님많아 왱왱거려 콩나물국밥 왱이집(063-287-6979) 앗뜨거워 뚝배기의 콩나물국밥 삼백집(063-284-2227) 더뜨거워 놋그릇의 전주비빔밥 성미당(063-287-8800) 서울지점 못따라와 원조비빔밥 고궁(063-251-3211) 평범해도 전통자랑 메밀국수 한양소바(063-251-1377) 밭을직접 갈아왔나 삼십반찬 한밭식당(063-284-3367) 전주자봉 단골집 돼지 고추장불고기 진미집(063-254-0460) 바퀴달린 가마타면 저렴하게 안착하니 군침돌면 친구꿰어 즐겁게 가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