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BIFF Daily > 10회(2005) > 영화제소식
AFA 제작 실습 현장 탐방

영화 제작 몸으로 배운다

기성감독과 초보 영화인 혹은 ‘잠재적인’ 영화인들이 함께 작업하는 광경이 궁금했다. 아시안필름아카데미(AFA)의 단편영화 촬영현장을 번갈아 찾은 것은 그 때문이다. 허우샤오시엔을 수장으로 박기용 감독과 유릭와이 촬영감독,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과 황기석 촬영감독이 마스터로 참여한 AFA의 제작 실습은 두 조로 나뉘어 진행됐다. 두 명의 마스터, 4명의 조교과정 학습자, 10명의 펠로우과정 학습자가 각각 한 팀을 이루고 임동석 동시녹음 기사, 박현원 조명감독팀 등 충무로 전문 스탭들이 현장 지원에 나섰다. 네 번에 걸쳐 두 현장을 찾아갔다. 4일의 촬영기간 동안 20신을 찍어 15분짜리 단편영화를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두 현장에 팽배해 있었다.

10월3일(월) 오후 4시/ A팀 <국제영화제>(International Film Festival) 촬영 시작전날 -여주인공 이름 뭘로 할까 “혜정으로 하자, 혜정” “싫어요, 왜 내 이름을 써” 박기용-유릭와이가 지도하는 A팀은 각본에 등장하는 여자 인물의 이름을 뭘로 할 것이냐를 놓고 토론 중이다. 임은경, 이영애, 전지현 같은 이름들이 어색한 한국어 발음으로 사방에서 튀어나온다. 한 중국인 학생이 “아이메이로 하자”고 강력히 주장한다. 한국 이름은 두 글자가 일반적이라는 사실이 그에게는 잘 와닿지 않는 모양이다. 학생들은 내일부터 시작될 촬영을 앞두고 장면을 하나하나 점검 중이다. 두 명의 마스터는 콘티작업 중이라 회의 자리에 없다. 박기용 감독은 워크숍 초반에 학생들에게 시나리오 초고를 주고 각자 윤색을 해오도록 했다고 한다. 제출한 학생에 한해 현장 연출권을 준다는 조건이 걸려 있었다. ‘연출권’이란 “액션!”을 외칠 수 있는 권한이다.

10월3일(월) 오후 5시/ B팀 <천장>(Ceiling) 촬영 첫 날 -세트 촬영이라 때깔나는 건가요? 같은 날, 논지 니미부트르-황기석이 지도하는 B팀은 첫 촬영을 시작했다. 부산영상센터 B스튜디오 안에 지어진 세트가 근사하다. 아늑한 소파와 예쁜 거울, 부드러운 카펫 그리고 빨간색, 녹색, 노란색, 파란색 등으로 빛나는 조명들. 신보경 프로덕션 디자이너(<태극기 휘날리며>)가 부산내 시장을 구걸하듯 뒤지고 다녀 싼 값에 사들인 소품들이란다. 때깔나는 세트 촬영만으로 이루어진 B팀의 현장은 한채영, 손경민, 정승우 등 세 기성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해 제법 상업영화 분위기를 풍긴다.

4명의 조교와 10명의 펠로우는 연출, 촬영, 조명, 미술 등 각 팀에 고루 배치돼있다. 황기석 촬영감독의 퍼스트가 올라간 사다리 아래에는 촬영팀 소속 펠로우들이 붙어 있다. 조감독 격인 조교과정 참가자 쿠마 판케이 리쉬(인도)가 “Silence on the set!”하고 외치자 슬레이트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배우가 연기를 하기도 전에 NG. 학생이 잡은 슬레이트 위치가 카메라 포커스를 벗어났다.

10월4일(화) 오후 6시/ B팀 <천장> 촬영 둘쨋날 -부족해도 열정만은 최고 펠로우 참가자인 문지원(23)이 세트 밖으로 바쁘게 걸어나간다. “제가 미술팀 소속인데요, 지금 세팅 바꾸는 중이라 정신이 없어요.” 하자센터 출신인 그는 독립영화 제작 경험을 갖고 있다. 오늘 촬영은 아침 7시부터 시작됐다. 날씨나 자연광의 제약을 받을 일이 없는 B팀의 현장은 오후 7시까지 그날의 촬영을 마치는 것이 목표. 한 스탭이 “예정보다 시간이 지연되니까 감독님이 머리에 뿔이 많이 나신 것 같아요”라는 말을 던져주고 사라진다.

황기석 촬영감독은 “학생들의 현장치고 상당히 빡빡한 일정”이라고 말한다. 학생들은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현장에서 가장 분주해보이는 것도 학생들이다. 다만 그들은 구체적인 지시가 없으면 현장의 요구를 바로 파악하지 못한다. 조명 위치를 조정하던 스탭이 곁에 서 있는 학생에게 “이것좀”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학생이 기쁘게 스탠드를 붙잡자 스탭은 고개를 젓는다. “No, No. This, This” 스탠드 나사를 조여달라는 것이었음을 학생은 그제서야 깨닫는다.

10월6일(목) 새벽 1시30분/ A팀 <국제영화제> 촬영 둘쨋날 -야외 촬영 이렇게 찍는 거구나 막 야간촬영에 돌입한 A팀은 야외 촬영 시스템을 배운다. 낮밤이 뒤바뀌는 생활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의 예상 촬영종료 시간은 새벽 다섯시 반. 해운대의 포장마차촌에서 한국인 제작자와 여배우가 국제영화제 수상자인 외국 감독에게 함께 영화를 만들자고 설득하는 장면이다. 제작자가 감독에게 산 낙지를 들이대고 “<올드보이>!” 하며 소주를 권한다. 현장 구석에서는 “I wanna drink soju” “Oh, me, too” 같은 짧은 영어 대화가 AFA 학생과 스탭 사이에 오간다. 그사이 낙지가 죽어버렸다.

제작자 역과 여배우 역은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한 배우들이지만 주인공인 감독 역은 한 학생이 맡았다. 유릭와이 곁에서 35mm 카메라를 잡은 이는 조교과정의 엄혜정(33). 물론 롤체인지는 스탭들 몫이다. 좋은 앵글을 찾아 배우들의 위치를 포장마차 왼쪽 구석에서 오른쪽 구석으로 옮기던 박기용 감독은 1시간 반이 지나서야 50초짜리 장면을 OK했다. 다음 촬영장소인 바닷가로 이동할 시간. “Let’s Move!” 조금 전 현장을 둘러보고 간 허우샤오시엔에게 인사를 받고 입을 함지박만큼 찢으며 좋아라하던 학생이 제일 씩씩하게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사진 최호경, 소동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