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인가 싶었다. 11살된 소년이 말을 꺼내면 금발에 푸른 눈을 한 남자가 맞장구를 쳐주고 동양인 여자가 말을 보탠다. 부산국제영화제 APEC 특별전 상영작 <새장>의 그래함 스트리터 감독과 주연 여배우 탄 켕 후아, 아역 배우 딕슨 탠 등 세 사람이 둘러앉은 자리는 갓 구운 핫케이크 한 접시만 테이블 위에 놓이면 단란한 가족의 티타임이 될 것 같다. <새장>은 싱가폴의 도시 근교를 배경으로 20년간 헤어져 살았던 부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영화는 시각장애인 아들을 둔 여자 알리와 그녀의 아버지 사이에 패인 긴 세월의 상처를 드러내고 다시 보듬어낸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20년간 쌓아둔 말을 아버지 앞에 쏟아내는 장면의 촬영이 가장 힘들었다고 켕은 말한다. 주연 배우에 대해 칭찬을 해달라고 하자, 스트리터 감독은 켕을 향해 “돈부터 내놔요”라며 웃는다.
오랜 친구마냥 사이좋은 감독과 배우 사이에 앉아, 딕슨은 쉴새없이 끼어들기를 하고 있었다. 딕슨은 부모와 형, 누나가 모두 온전한 시력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난 유일한 시각장애인 소년이다. 싱가폴 내에서는 그의 시각장애 원인을 찾아줄 의사도 없거니와 “사회에 환원할 능력이 없는 장애인에게는 정부가 지원도 않으므로” 제3자들의 재정적인 도움을 받아 해외 의료진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감독과 여배우가 사정을 들려준다. 그들의 눈빛이 부모 같다. 자신이 시각장애인이란 사실에 전혀 기죽지 않는 딕슨은 싱가폴 의료진보다 미국 의료진이 훨씬 나은 까닭을 자신의 생각대로 똘똘하게 이야기했다. 감독과 여배우는 소년의 이야기를 좀처럼 가로막지 않고 다 들어주었다. 똘똘한 소년과 장난기 넘치는 감독과 세련된 유머감각을 지닌 여배우와의 인터뷰는 1시간도 모자랐다. 다같이 저녁식사를 하러 갈 참인데 같이 가겠느냐고 감독이 묻는다. 친절한 제안을 거절해야하는 미안한 마음이 진심이라고, 두번 세번 강조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