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로 본격적인 시작을 맞는 가정의 달 5월. 화창한 날씨지만 아이들과 밖에 나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주말만 되어도, 아니 요즘은 금요일 오후부터 유원지, 놀이공원은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리기 마련이다. 하물며 어린이날이면 오죽할까. 물론 적당히 인파가 있어야 흥이 나고 재미가 있지만, 걸을 때마다 사람들과 부딪칠 정도면 곤란하다.
물론 아이들이야 밖에서 노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여의치 않아서 집에서 휴일을 보내야 한다면, 좋은 영화 한 두 편과 함께 모처럼 가족간에 여유로운 대화를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현재 국내에 나와 있는 DVD 타이틀 가운데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 좋은 작품들을 몇 편 꼽아보았다.
피터팬 (브에나비스타)
아스팔트와 답답한 벽돌담에 둘러싸인 채 어른보다 더 바쁜 하루를 살아가는 어린이들과 먹고사는 일에 바빠 어린 시절을 잊어버린 어른들에게, 해마다 놀이동산과 자유로운 비행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찾아오는 영원한 소년 피터팬. 희곡작가 제임스 배리에 의해 창작된 이후 100년 동안 해마다 찾아오고 있지만, 만날 때마다 새롭고 즐겁다.
피터팬을 따라 요정의 가루를 뿌리고 즐거운 상상을 하며 밤새 하늘을 날아서 나이를 먹지 않는 어린이들의 낙원 네버랜드로 가보자. 인디언 마을에서 즐겁게 인디언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외팔이 해적선장을 물리치며 멋진 모험을 즐기는 동안만큼은 세상의 나이가 아닌 동심의 나이로 되돌아간다. 손가락만 바쁜 게임기가 아니라 노래 부르고 뛰노는 놀이가 그리운 사람들에게 강추.
니모를 찾아서 (브에나비스타)
아빠의 지나친 간섭이 싫은 초등학생 물고기 니모와 혹시나 아들이 잘못될까 횡단보도조차 함부로 못 건너게 과잉보호하는 아빠 물고기 말린. 말썽꾸러기 니모가 잠수부에게 잡혀가면서 소심한 말린의 멀고도 험난한 아들찾기 여행이 펼쳐진다. 일찍이 인생사의 고통을 알아버린 말린은 아들에게만큼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즐겁고도 행복한 사건이 하나도 없는 무미건조한 삶이 되지 않을까. 단기기억상실증 물고기 도리와 함께 대서양 횡단을 감행하는 광대물고기 말린의 유쾌하고도 흥미진진한 여행에 동참해보자. 무기력해보였던 아빠가 자신을 구출하러 먼 길을 헤엄쳐온다는 말에 감동을 받는 니모의 모습을 통해 가족애를 다시 확인하면서 덩달아 코끝이 찡해진다.
몬스터 주식회사 (브에나비스타)
<몬스터 주식회사>를 추천하는 이유는 그 놀라운 상상력 때문이다. 잠들기 전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어둠 속에는 실제로 괴물들이 숨어 있는데, 그들은 아이들의 공포심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몬스터 주식회사’의 사원들이다. 하지만 그 괴물들은 아이들과 직접 접촉하는 것을 끔찍이 두려워한다. 이 얼마나 기막힌 설정인가. 아마도 실사 영화나 2차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도 흥미로울 법한 이야기다. 그것을 이 시대 최고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가 만들었으니 그 재미가 오죽하랴. 아이들은 선량한 털북숭이 괴물 셜리에게 푹 빠지고, 어른들은 앙증맞은 꼬마 부에게 매료될 수밖에.
DVD로 봐야할 이유 또한 분명한데, 눈이 시릴 정도로 깨끗한 화질과 함께 뛰어난 우리말 음향을 담았기 때문이다. 본 영화가 다 끝났다고 아쉬워하는 아이들에게는 부록으로 수록된 단편 애니메이션을 틀어주기 바란다. 본편만큼이나 재미있다.
보노보노 (DVD 애니)
평화로운 숲 속에 살고 있는 착한 아기 해달 보노보노와 새침때기 포로리 그리고 심술쟁이 너부리가 벌이는 좌충우돌 스토리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항상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언제나 우정으로 똘똘 뭉친 그들의 모습은 정말 사랑스럽다. 그리고 심심찮게 등장하는 다른 숲 속 친구들의 모습도 보는 이의 배꼽을 잡게 만든다.
온 가족이 함께 모여앉아 볼 수 있는 최고의 작품으로 어른들에게는 해학적인 웃음을 아이들에게는 무한한 상상력과 재미를 준다. 각 캐릭터의 성격과 너무 잘 어울리는 한국어 더빙 또한 수준급이다. 가격 또한 저렴해서 어린이날 선물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이웃집 토토로 (대원 디지털)
한적한 시골마을, 신선한 공기, 따사롭게 내리쬐는 태양. <이웃집 토토로>는 우리가 가장 동경하고 있는 풍경을 가장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몸이 아픈 어머니 때문에 시골로 이사 온 사츠키와 메이가 어느 날 숲 속에 살고 있는 토토로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신기한 일들이 메인 스토리이다.
무섭게 보이지만 항상 졸린 눈을 하고 있는 토토로와 귀여운 고양이 버스는 어린이들이 보면 한눈에 반할 만큼 사랑스럽다. 토토로와 함께 거대한 팽이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 어른들도 이 작품을 보고나면 토토로 인형을 사러 가게로 달려갈 정도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어 더빙이 잘 되어 있으므로 어린이와 함께 감상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날아라 슈퍼보드 (매니아 엔터테인먼트)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는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에게 인기가 높은 캐릭터이다. 갖가지 신기한 마술과 능력으로 악당들을 제압하는 모습에서 큰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나라에서 각색된 서유기가 나왔는데 그중에서 <날아라, 슈퍼보드>는 각색판 중 최고의 걸작이라 불릴 만 하다.
한 때 온 국민이 외우고 다녔던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쵸!’라는 손오공의 주문을 유행시켰으며, 동문서답을 일삼는 사오정은 수많은 개그프로에서 회자되며 유명한 사오정 시리즈를 낳기도 했다. 권선징악의 확실한 스토리 라인과 각 캐릭터의 개그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큰 재미를 준다. 어린이날 때문이 아니더라도 두고두고 볼 수 있는 훌륭한 작품으로 강력 추천한다.
네버엔딩 스토리 (스펙트럼디브이디 - ‘키즈 박스세트’에 포함)
미카엘 엔데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제작 당시 독일 영화사상 최대의 제작비가 투입되어 대단한 화제가 되었다. <특전 유보트>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볼프강 페터슨의 사실상 ‘할리우드 진출’ 준비작으로, 모든 대사가 영어로 더빙되고 원작 소설보다 더욱 희극적인 분위기가 강조되는 등 여러 면에서 ‘국제적인’ 흥행을 의식한 흔적이 엿보인다. 원작 소설처럼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현실 세계에 살고 있는 바스티안의 눈으로 책 속의 주인공 아트레이유의 기막힌 모험담이 그려진다.
유럽 개봉 시 <E.T.>에 비견될 정도의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고, 스티븐 스필버그도 영화를 본 뒤 큰 감명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원작 소설 중 1부만을 영화화했는데, 정작 원작자 미카엘 엔데는 지나치게 아동적인 영화의 분위기와 다소 작위적인 엔딩 부분 연출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독일 영화사상 가장 큰 규모의 판타지 영화답게 특수효과 부문에는 정상급 기량을 지닌 할리우드의 스텝들이 동원되었는데, 이로 인해 기괴한 모습의 상상의 동물들과 아름다운 가상공간의 세트 등 화려한 볼거리가 영화 내내 줄을 잇는다. 조르지오 모로더가 작곡하고 리말이 부른 주제가도 크게 히트했다. 온 가족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판타지물이다.
오즈의 마법사 (워너브라더스)
프랭크 바움의 명작 소설을 영화화 한 것으로, 현재는 원작 소설보다 오히려 더 유명한 영화가 되었다. 판타지 영화의 고전으로 손꼽힐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100년사의 최고 걸작 리스트에도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수작이다. 가장 많은 장면을 연출한 빅터 플레밍을 포함해, 무려 5명 감독들이 동원되어 우여곡절 끝에 완성되었는데 현실 장면은 흑백으로, 마법 세계는 컬러로 구성하는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이라 할 정도의 실험적인 시도를 했다. 특히 초창기 테크니컬러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오묘한 컬러 색감과 영화사에 길이 남을 특수효과 장면이 압권.
도로시 역을 맡은 주디 갈란드가 부른 주제가 ‘오버 더 레인보우 Over the Rainbow'는 시공을 초월하는 메가톤급 히트곡이 되었다. 연령층에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멋진 판타지 영화이다. DVD는 새로 복원된 화질을 담고 있는데, 제작년도를 의심케 하는 화려한 색감이 인상적이다. 안젤라 란스베리가 진행하는 메이킹 다큐 등 서플먼트도 영화 본편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천국의 아이들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제목 그대로, 어린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영화. 소년 알리는 동생 자라의 구두를 실수로 잃어버려 남매가 운동화 한 켤레로 버텨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학교 오전반의 자라가 운동화를 먼저 신으면, 그 다음에 알리가 넘겨받아 신고 다음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달려야 하는 생활이 계속된다. 그때 3등상으로 운동화가 상품으로 걸린 어린이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달리기라면 누구보다도 자신 있는 알리는 1등이 아닌, 3등을 하기 위해 전력질주(?)를 시작하는데….국내에서는 자주 보기 힘든 이란 영화로, 가난하지만 순수와 사랑을 잃지 않는 남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각박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들에게도 청량감을 주는 영화다. 클라이맥스의 마라톤 장면은 필견이다.
위대한 비상 (파파 DVD)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여행자’인 철새들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담아낸 경이로운 기록물. 철새들의 이동을 담기 위해 제작진은 3년이라는 오랜 기간동안 막대한 인력을 투입, 아프리카 사막에서 극지대까지 지구상 오지들을 두루 탐험해야했다.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하늘을 나는 철새들을 통해 대자연의 신비와 경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생생한 화질과 음질은 기본이며, 조류학자 윤무부 교수의 투박하지만 정겨운 음성해설은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영상에 지적 재미를 선사한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선입견을 떨칠 수 있는 작품으로, 아이들의 감성발달에 좋은 타이틀이다. 포토 갤러리 또한 놓칠 수 없는 부록. 영화 제작 중간에 틈틈이 찍었던 철새들의 아름다운 사진들과 촬영팀의 모습들을 수록했다.
마이크로코스모스 (미디어체인)
곤충들의 생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곤충의 세계가 인간의 눈에는 잘 띄지 않는 또 하나의 소우주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나비, 꿀벌 등의 친숙한 곤충들이 사랑하고, 싸우고, 몸치장하는 모습은 친근감이 넘치고, 인간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빗방울 하나가 곤충에게는 거대한 폭탄보다도 무서운 재해라는 사실을 묘사하는 등 관객들이 보다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교훈도 잊지 않는다. 사람이 등장하지 않지만, 웬만한 극영화 뺨칠 정도로 스펙터클한 영상과 흥미로운 구성으로 다큐멘터리 특유의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DVD에는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의 감칠맛 나는 진행으로 유명한 손범수 아나운서의 우리말 더빙도 들어 있어 어린이들도 무리 없이 감상할 수 있다. 재미는 물론이고 교육적 효과도 뛰어난 타이틀로, 도시 생활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자연을 고스란히 담은 아름다운 영상도 빼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