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한 말들의 시간> <거북이도 난다>는 모두 아이들을 찍은 영화다. 당신이 쿠르드족의 현실을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유독 아이들에게 끌리는 까닭은 무엇인가. =나는 아이들을 사랑한다.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나도 아이같다고 생각한다. 이라크 전쟁이 끝나고 처음 이라크에 갔을 때에는 반전에 관한 영화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아이들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힘들게 전쟁을 겪었고 미래도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미래를 주고 싶었다.
-<거북이도 난다>에 출연하는 아이들은 모두 비전문 배우들이다.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캐스팅했는가. 그리고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배우를 찾기위해 어시스턴트 3명과 4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이라크의 쿠르디스탄 지역을 두달동안 돌아다녔다. 그 때문에 영화에 나오는 아이들은 모두 다른지역 출신이다. 위성으로 출연한 아이는 연기도 잘하고 똑똑해서 계속 영화를 하게 할 생각이다. <취한 말들의 시간>에 아윱으로 나오는 아이와 함께 내가 만드는 영화에 스탭으로 참여할 것 같다. 아그린은 연기를 하고 싶어해서 쿠르드족을 위한 방송국에 소개시켜주었다. 지금 월급 3백달러를 받고 있는데, 앞으로도 30년은 일거리가 떨어지지 않을 듯하다(웃음). 눈이 안 보이는 아이는 영화촬영이 끝나고 수술을 받아서 시력을 회복했다. 나는 내 영화가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눈을 뜨게 해주는 영화였으면 했고, 사전적인 의미로도 눈을 뜨게 했다.
-당신 또한 쿠르드족이다. 당신이 만드는 영화와 같은 경험을 겪은 적이 있는가.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혁명이 일어났을 때 나는 아직 어린 아이였다. 그 혁명 때문에 쿠르디스탄에서 내전이 있었다. 나는 그 전쟁을 지켜보았고 이어진 이란·이슬람 8년 전쟁도 그 지역에서 겪었다. 크고 작은 전쟁이 매일 일어났다. 전쟁중에 내 사촌 3명과 삼촌이 살해당했고, 고모가 죽었고, 여동생이 다쳤다. 그래서 내가 쿠르드족의 번뇌와 고민을 영화에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내 영화의 캐릭터들은 모두 어느정도 나와 닮았다. <거북이도 난다>의 아이들도 내 마음 속에 있던 외침이다. 나 역시 가장이었다. 열여섯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에 누나 셋과 동생 셋은 장남인 내가 아버지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지 않지만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 당신이 쿠르드 족의 영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전혀 정치적이지 않고, 정치의 천적이나 마찬가지다. 쿠르드족도 그렇다. 이란과 이라크, 터키, 시리아에 나라없이 퍼져 살고있는 쿠르드족은 4천만명이나 되지만, 그들을 위한 영화는 여덟편뿐이고, 그나마 필름이 낡아 제대로 볼 수도 없다. 쿠르드족은 매우 영리하고 존중받아 마땅한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데도 그들이 발전하길 원하지 않는 아랍국가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없다. 대부분의 쿠르드족은 정치적이지 않다. 그런데 쿠르드를 둘러싼 아랍국가들이 쿠르드를 정치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비행기, 전쟁, 폭탄이 또한 쿠르드를 정치적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