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매진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 단편의 선택, 그 두번째 카테고리 ‘우리시대 타자들’의 네 작품이 관객과 만났다. 가장 먼저 소개된 다운증후군 소녀 버들이에 관한 다큐멘터리 <울타리 넓히기>(황선희)에는 엄마의 연출 데뷔작을 보러 극장에 온 버들이로 인해 많은 관심을 모았다. <울타리 넓히기>는 만듦새가 탁월하지는 않지만, 짝사랑에 빠진 딸의 시름을 지켜보며,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는 어머니의 시선과 목소리가 두드러진다.
“딸의 대변인 자격으로 참여한 장애인 미디어 교실에서 영상 작업을 시작하면서, 이전까지 주로 혼잣말을 하던 딸애와 소통할 수 있게 됐다. 이 작업은 우리 모녀에게 많은 걸 주었다”. 한국 남자와 결혼하길 희망하는 베트남 처녀를 아버지와 맺어주려다 자신이 애틋한 감정에 빠지게 되는 아들의 이야기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이미랑)는 ‘타자’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 감독의 설명.
이미랑 감독은 부자와 베트남 처녀의 삼각관계의 결론을 아쉬워하는 관객에게 “이들 셋의 감정이 교차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외국인 처녀들의 결혼 사례 조사에 기반해 결론을 내렸지만, 2탄으로 불륜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으니 기대하라”고 재치있게 응수했다. 자폐 기질이 있는 형과 장난꾸러기 동생, 삶의 피로에 젖은 엄마가 함께 한 여름날의 짧은 나들이 <물결이 일다>(신동석)는 사색적이고 서정적인 단편이다.
신동석 감독은 형이 선글라스와 클락숀에 집착하는 이유를 묻자, “논리적인 설명 보다는 정서적인 표현을 위해 그런 요소를 썼다”면서, 관객의 해석과 상상에 맡기고 싶다고 했다. ‘가리봉동’과 ‘라스베가스’를 합친 제목의 단편 <가리베가스>(김선민)는 한때 산업화의 메카였던 구로공단이 디지털 산업단지로 바뀌면서, 한 여성 노동자가 무력하게 밀려나는 과정을 담담하게 포착했다. 공간이 또 다른 주인공인 만큼 무엇보다 중요했던 촬영에 대해 김선민 감독은 “예쁜 화면은 원치 않았다. 촬영 감독에게 주인공이 밀려나가는 얘기를 다큐멘터리 풍으로 찍어달라고 주문했다. 그래야 감정의 디테일을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 날 관객과의 대화는 시종 오붓하면서도 진지한 분위기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