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 장기수 김선명씨의 삶을 다룬 영화 <선택>의 홍기선 감독이 인디비전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전주를 찾았다. 그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입장에서 다른 감독들의 작품을 심사하는 것이 썩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신예들의 영화를 감상하고 평가하는 데 대한 기대는 크다고 소감을 밝혔다.
“나도 심사라는 것을 당해본 입장이기 때문에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그나마 심사 대상에 한국영화가 없는 건 다행이다. 내 기준에서 좋다고 생각되는 영화에 대한 의견을 보태려고 한다. 사회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거나 관념적이지 않은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기성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도에 높은 점수를 주려 한다”. 홍기선 감독은 영화제 기간에 모스크바 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역임한 평론가 안드레이 플라코프, 그리고 <언더토우>의 감독 데이빗 고든 그린과 의견을 나누게 된다.
<선택> 이후 홍기선 감독이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1997년 이태원 버거킹에서 벌어진 대학생 살인사건을 짚어낸 <버거킹 살인사건>(가제)이다. 재미교포와 미군속 아들이 무고한 대학생을 ‘재미 삼아’ 난자해 충격을 던져줬던 당시 사건은 두 피의자가 무죄판결을 받고 해외로 도주하면서 ‘미제’로 남았다. “평소 한국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부분에 관심이 많았다. 예외적으로 미군이 수사협조를 많이 했지만, 피의자가 사라져 미묘해진 이 사건을 재조명할 필요를 느꼈다. 장르의 미스테리가 아니라, 현실의 미스테리로 접근하려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 개봉한 <선택>에 대해선 아쉬움이 많지만, 같은 소재를 다룬 다큐멘터리 <송환>이 국내외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 ‘자신의 일’처럼 기뻤던 모양이다. 영진위에서 기획개발비를 지원받아 진행중인 <버거킹 살인사건>은 시나리오 완성을 앞두고 있다. 한때 신경숙의 노동소설 <외딴 방>의 영화화를 추진하기도 했던 홍기선 감독의 눈은 여전히 사회를 향해 열려 있는데, 그런 그의 우직함과 진정성이 어린 신작을 머지 않은 장래에 만날 수 있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