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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시인 타무라 시게루의 작품세계
한청남 2005-04-15

타무라 시게루

영상작가로 불리는 타무라 시게루(たむら しげる)는 본업인 일러스트레이션을 비롯해 화가이자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국제적으로 이름난 인물이다. 그는 1949년 11월 26일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산업 디자인에 종사하던 중 1976년 화가로 데뷔했다. 그 후 석판 인쇄, 컴퓨터 그래픽, 수채화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그림책, 만화, CD-ROM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약하는 멀티미디어 아티스트로 각광받게 된다.

단순하지만 정감이 가는 그림체로 밤하늘의 별이나 보석 같이 빛나는 것을 모티브로 한 환상적인 세계를 그리는 것이 그의 주된 작품 테마이다. 일본에서는 광고 영상에서부터 책표지, 교과서 삽화 등 광범위한 분야에 그의 작품이 쓰일 정도로 유명하다.

특히 일러스트 제작에 매킨토시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인물로 유명한데, 손으로 그린 스케치를 컴퓨터로 불러들여 색채를 부여하는 그의 기법은 독특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로 보는 이들을 사로잡고 있다. 선명한 원색과 풍부한 음영, 그리고 화려한 형광색을 통해 아름다운 세계를 구축한다는 평을 얻고 있다. 특히 그의 대표적인 영상 작품인 <은하의 물고기> <고래의 도약> 그리고 <판타스마고리아>는 세계 각국에서 절찬을 받으며 각종 상들을 수상했다.

<은하의 물고기> 중에서

<은하의 물고기>는 1985년에 간행된 타무라 시게루의 만화 ‘스몰 플래닛’ 중에서 한 편을 CG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이다. 어딘지 알 수 없는 세계. 천문대에서 사는 노인과 소년은 별들에게 일어난 이변을 깨닫는다. 그들은 보트를 타고 강을 지나게 되는데, 강 밑에는 지상의 풍경이 펼쳐져 있고 어느 새 보트는 은하수를 건너고 있었다. 이 꿈같은 애니메이션은 1993년 매킨토시용 CD-ROM 영상집으로 처음 선을 보였는데, 이후 세계 최초 HD 해상도로 제작된 CG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한다. 당시 저사양의 컴퓨터로 막대한 용량을 다루다보니 1년 가까운 시행착오 기간을 거처야 했다는 후문이다.

<은하의 물고기>의 동굴 장면에서는 3D CG로 만들어진 크리스탈이 잠깐 나온다. 이는 비주얼 디자인을 담당했던 가토 신야(加藤慎也)의 작품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조야한 수준의 결과물이지만, 그가 비주얼 디렉터를 맡은 <고래의 도약>(1998)에 이르러서는 지금 봐도 손색이 없을 만큼 눈부신 에메랄드 빛 ‘유리 바다’로 변모하게 된다.

<고래의 도약> 중에서

<고래의 도약>은 원래 12페이지 분량의 흑백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제작진은 3D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게 된 동기에 대해 “거의 정지된 시간 속에서 물 밖으로 머리만 내밀고 있는 고래의 주위를 회전하는 카메라로 담아내면 입체감이 생겨날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제작 방식은 타무라 시게루가 그린 레이아웃 원화 일러스트에 유리 바다의 3D CG를 합성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문제는 2D 일러스트와 3D 영상간의 위화감을 없애는 일이었는데, 그 두 가지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지점을 포착하기 위해 끝없는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또한 작품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적절한 카메라 회전 궤도의 포착을 비롯해 유리 바다에 반사되는 빛, 반짝이는 입자, 음영 등의 디테일한 표현들은 방대한 작업량을 요구했으며, 때문에 20여분 남짓한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3년이라는 제작기간이 소요됐다.

그 결과 에메랄드그린으로 투명하게 빛나는 유리 바다는 카메라의 패닝에 의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며, <매트릭스> 보다 일찍 선보인 카메라의 360도 회전은 하나의 스펙터클을 선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3D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타무라 시게루의 수작업 일러스트가 가지고 있던 독특한 묘미를 고스란히 살린 점이다. 물론 기술적인 성과에 있어서는 픽사로 대표되는 미국 제작사들의 작품들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아티스트의 개성을 담은 독립 애니메이션으로서 그 가치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판타스마고리아>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타무라 시게루의 또 다른 애니메이션 작품 <판타스마고리아>는 1989년에 발표된 그의 화집 ‘판타스마고리아’를 원작으로 한 단편 모음집이다. 역시 애니메이션이기 이전에 ‘어뮤즈먼트 플래닛 판타스마고리아’이라는 CD-ROM 인터렉티브 소프트웨어로 발표된 바 있다. 작가 특유의 상상력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으로 기상천외한 내용들로 가득하지만 그와 대비되는 담담한 영상이 특징이라고. 유리 바다에서의 생활, 스노우맨의 남쪽 여행, 거대 전구가 빛을 발하는 날, 유성이 흐르는 밤, 별과 함께 사는 플라네타리움 기사, 버섯 마을 등 ‘판타스마고리아’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각 단편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20여분 남짓한 단편으로 제작된 앞의 두 작품에 비해 러닝타임이 비교적 장편에 가까운 78분이다.

타무라 시게루의 영상 작품이 가지는 최대 특징은 원화 일러스트레이션의 세계를 그대로 재현함과 동시에 그 안에 담겨진 상상력을 구체화시켰다는데 있다. 이것은 원래 애니메이션 전문 제작사가 아니었던 타무라 시게루의 프로덕션 ‘아이가아레바다이죠부(愛があれば大丈夫)’가 기존의 제작 이론을 무시하고 불가능으로 여겨지던 일에 과감히 도전했기 때문에 얻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타무라 시게루의 작품 중 <은하의 물고기> <고래의 도약>(4월 18일 출시 예정), 두 편을 DVD로 만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디즈니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애니메이션으로 꼭 한 번 감상해볼 것을 권한다.